지난해 4월 중국 광시좡족자치구의 난닝·중관춘 혁신시범기지를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JJR이라는 현지 벤처기업이 개발한 농지 관리시스템에 호기심을 보였다.
스마트폰 앱으로 농지 전반을 관리하며 농업용수·비료 사용량을 절감하는 시스템이다.
1년에 소요되는 농업용수 구매액보다 저렴하다는 답이 돌아오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뒤 "정보기술(IT)도 민생 문제 해결에 도움이 돼야 의미가 있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광시는 농업 등 전통 산업의 기반 위에 제조업과 첨단산업을 얹은 독특한 형태의 경제 생태계를 조성 중이다. 특히 농업에 IT 기술을 접목해 빈곤층의 소득 증대를 꾀하는 정책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달 방중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베이징 농업과학원과 벤처 창업의 요람인 중관춘으로 달려갔다.
농업 현대화와 IT 산업 육성을 경제 발전의 핵심으로 여기고 있다는 방증이다.
◆中 남부 IT·창업 메카 꿈꾸는 난닝
광시좡족자치구의 주도인 난닝시는 2015년 12월 베이징 중관춘 관리위원회와 합작 협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6월 국무원의 비준을 받은 뒤 준비 작업을 거쳐 올해 4월 난닝·중관춘 혁신시범기지가 공식 출범했다.
중국 IT 산업의 요람으로 평가받는 '중관춘' 팻말을 단 혁신기지가 들어선 곳은 톈진 빈하이신구(滨海新区)와 허베이성 슝안신구(雄安新區)에 이어 난닝이 세 번째다.
지난달 23일 찾은 난닝·중관춘 혁신기지에는 45개의 대기업 연구소와 66개의 벤처기업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은 물론 디디추싱(滴滴出行) 등 중국 IT 시장의 신흥 강자들도 대거 입주한 상태였다.
벤처기업의 상당수는 농업 분야의 신기술 연구와 상품화에 매진하고 있었다.
사물인터넷(IoT) 전문 벤처기업인 탤런트클라우드의 왕샤오둥(王篠東) 최고경영자(CEO)는 "현지 지방정부의 지원 규모가 가장 큰 분야가 농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MS 엔지니어로 근무하다가 중국 농업 현대화 시장의 성장 잠재력을 믿고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고 설명했다.
이 기업은 스마트폰 앱으로 경작 현황과 최적의 재배 방법 등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광시는 물론 간쑤·칭하이·안후이성 등 농업 의존도가 높고 낙후한 지역에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밖에 소형 무인항공기 등 군사 장비, 바이오·의약 분야의 벤처기업들도 대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창업 대박'을 꿈꾸고 있었다.
혁신기지 관계자는 "지난해 이후 입주 기업 수가 대기업은 95%, 벤처기업은 186% 증가했다"며 "벤처기업의 경우 난닝에서 창업한 기업이 80% 이상"이라고 소개했다.
변변한 산업 시설이 없었던 난닝은 제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속철과 버스 제작업체인 중국베이처(CNR)의 공장을 유치한 게 대표적이다.
왕하이윈(王海雲) 난닝시 신문판공실 주임은 "난닝에서 운행하는 지하철과 버스 등을 현지에서 공급하는 게 1차 목표"라며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수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왕 주임은 중국의 첨단산업 육성 프로젝트인 '중국 제조 2025'에 빗대 "조만간 '난닝 제조'도 완성될 것"이라며 웃었다.
◆농업 현대화 선봉에 선 바이서
난닝에서 차를 타고 서북쪽으로 1시간가량 달리면 광시 농업 현대화의 산실인 바이서시에 도착한다.
바이서 인근의 톈양현에는 133㎢ 면적의 망고나무 재배지가 있다. 국영기업인 헝마오(恒茂)그룹이 2021년까지 25억 위안(약 42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며 현재 1단계로 30만 그루를 재배하고 있다.
광시는 하이난·윈난성과 함께 중국 내 3대 망고 산지로 꼽히지만 기존 재배 방식으로는 수익성 확보가 어려워 농민들이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중국 정부는 국유기업을 앞세워 생산과 유통, 마케팅·판매 수단을 선진화하고 수익 배분 기준도 변경했다. 탈(脫)빈곤 정책의 일환이다.
이 지역의 농민은 하루 30위안(약 5000원)의 일당 외에 회사 수익의 10%를 배당금으로 받는다. 한 그루당 30위안을 내고 망고나무를 사면 수확한 망고는 농민 소유가 된다. 세 종류의 수입원을 제공한 셈이다.
이를 통해 지난 2년 동안 7만 명 수준이던 빈곤 농민이 5만 명으로 줄었다. 가구당 연 수입은 7000~8000위안에서 3만8000위안으로 5배 이상 뛰었다.
현장 책임자인 장정훙(張徵宏) 헝마오그룹 총경리는 "농민과 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었다"며 3년 뒤 빈곤 퇴치를 목표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