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광시좡족자치구 서부의 징시시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40분가량 이동하면 베트남 접경인 룽방(龍邦) 커우안(口岸·세관이 있는 국경 통과 지점)에 도착한다.
중국과 베트남은 국경 무역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이 지역에서 자유무역구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 4대 직할시 중 하나인 충칭에서 구이저우성을 거쳐 광시좡족자치구를 통과한 뒤 베트남 하노이까지 연결되는 고속도로도 건설 중이다. 중국 쪽 도로 길이만 760㎞가 넘는다.
연말 고속도로가 완공된 이후에는 매년 5000만t 규모의 화물이 중국과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지역을 오가게 된다.
지난해 4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시찰할 정도로 동남아를 향한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관문으로 주목을 받는 곳이다.
◆면세 무역, 소득 향상·이탈 방지 '일석이조'
지난달 27일 오전 룽방 커우안 내 자유무역구를 찾았다. 수백명의 현지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이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베트남을 드나드는 무역상이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화물을 나르고 일당을 받는 막일꾼이다.
무역상이라고는 부르지만 보따리장수에 더 가깝다. 매일 8000위안(약 134만원)어치의 물건을 떼어다가 파는데, 관세가 붙지 않아 차익이 상당하다.
자유무역구 내에서 면세 혜택이 제공되는 500개 품목 중 일부를 선택해 구매한 뒤 외부에 나가 판매한다.
중국산 생필품을 베트남에 팔고, 다시 베트남산 농·수산물을 들여와 중국 시장에 파는 식이다.
이는 중국 정부가 베트남 접경 지역의 공동화 현상을 막고 인근 주민들의 소득 수준을 높이기 위해 새로 도입한 제도다. 덕분에 27만명 수준이던 빈곤층이 14만명 정도로 줄었다.
자유무역구 관계자는 "주민들이 직접 국경 무역에 나서면서 탈(脫)빈곤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일자리를 찾아 광둥성이나 푸젠성 등으로 떠나는 주민 수도 감소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아이디어는 북·중 접경 지역에서도 적용할 만하다. 북한식 시장경제인 이른바 '장마당' 경제 규모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뒤 큰 폭으로 확대돼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20~30%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공식적인 장마당 수는 400여개로 알려졌지만 750개 이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 탓에 밀무역이 성행한다.
북한의 비핵화 선언 뒤 중국 측은 대북 무역 규모가 확대될 것에 대비해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다. 국경 도시인 단둥의 경우 기존 세관보다 훨씬 큰 3층 규모의 새로운 세관 건물이 준공된 것으로 알려졌다.
약 1400㎞ 길이의 북·중 국경선에 설치된 16개 커우안에서 면세 범위 내 개인 무역을 허용한다면 무역 종사자들의 소득 향상과 장마당 활성화를 동시에 꾀할 수 있다.
◆접경지역, 물류·관광산업 육성에 적격
중국의 대형 투자회사인 완성룽(萬生隆)그룹은 정부 지원을 받아 룽방 커우안에 물류기지와 관광단지를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투자 규모는 30억 위안(약 5050억원)이다.
알리바바 등 10여개 기업이 입주 의사를 밝힌 물류기지는 현재 지반 다지기 공사가 한창이다. 아세안 지역의 원자재와 중국에서 생산된 전자제품 부품 등을 교차 운송하게 된다.
슝훙밍(熊紅明) 완성룽그룹 부총재는 "철도·해상 운송은 느리고 항공 운송은 비싸다"며 "커우안을 통과해 육로로 운송하면 충칭에서 베트남까지 하루면 충분하다"고 물류기지 설립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중국은 현재 개인 간 거래에 한해 제공하는 면세 혜택을 기업 간 거래에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슝 부총재는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체결하지 않아도 비슷한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셈"이라며 "변경 지역은 늘 새로운 사업 기회가 창출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광시좡족자치구는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좡족 외에도 12개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완성룽그룹은 이들이 가진 문화 콘텐츠를 활용한 관광상품을 개발 중이다. 관광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호텔과 리조트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완성룽그룹의 한 관계자는 흥미로운 얘기를 건넸다. 그는 "북한과 관련된 다양한 소식을 접하고 있다"며 "중국 동북 3성(랴오닝·지린·헤이룽장성)과 북한이 밀접하게 연계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북·중 접경 지역의 물류와 관광 사업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방중한 김정은 위원장은 베이징 기초시설투자유한공사를 방문하며 물류·인프라 분야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앞서 지난 5월 중국을 방문했던 북한 노동당 친선 참관단도 중국의 주요 무역항인 저장성 닝보를 견학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