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생리대 사태...한국서 승소하기 힘든 '공동소송'

2018-03-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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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살충제 달걀, 애플 배터리 게이트, 생리대 유해성 논란 등 공동소송 잔혹사

한국은 집단소송 인정 안 해…증권 분야만 2005년부터 집단소송 인정

법원, 피해 입증 책임 소비자에 있고 기업 책임 보수적으로 봐

전문가들 "피해자 수천 모이고 법원이 중립적이여도 기업 대응하기엔 한계"

[아주경제 DB]


가습기 살균제, 살충제 달걀, 애플 배터리 게이트, 생리대 유해성 논란 등 곳곳에서 집단소송이 번지고 있다. 정부가 올 상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통해 집단소송제 도입을 공식화되면서 앞으로 관련 움직임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집단소송은 기업의 잘못된 행동으로 다수의 소비자가 피해를 봤을 때 한명 또는 일부가 소송을 제기해 이기면 소송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배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국내에선 지난 2005년 증권 집단소송법이 도입, 관련 분야에만 집단 소송이 가능하다.
때문에 최근 진행 중인 유해성 생리대, 가습기 살균제, 애플 배터리 소송 등은 공동소송 형태로 진행 중이다.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는 법적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원고 숫자만 다른 뿐 일만 민사소송과 같은 구조다.

실제 피해자들이 승소하기도 쉽지 않다. 대표적으로 적용되는 제조물책임법 등에서는 제품 결함 및 피해사실을 소비자가 직접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판결 역시 기업에 유리한 측면이 많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깨끗한나라는 최근 여성환경연대 등 시민단체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3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사측은 지난해 3월 여성환경연대가 생리대 유해성을 실험하는 과정에서 설계상의 오류가 있었던 김만구 강원대 교수 연구팀의 조사결과를 그대로 인용했다고 주장했다.

연구결과는 무기명으로 보고됐지만 유해성 생리대에 ‘릴리안(깨끗한나라)’이 포함됐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불매운동이 일어나 회사의 명예가 실추되고 물리적 피해를 입었다는 게 사측 입장이다.

생리대 유해성 논란을 처음 제기한 여성환경연대는 사태가 확산되자 실험결과를 언론에 공개했다. 그 결과 릴리안은 유한킴벌리 등 다른 제조사 생리대와 비교해 유해물질 수치가 낮은편이었다. 해당 결과로 전체 생리대에 대한 안전성 논란이 불거졌고, 식약처는 시중에 유통 중인 생리대에 포함된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10종 전수조사를 진행했다.

식약처는 3개월간의 자체조사 후 지난해 9월 “생리대에서 나올 수 있는 VOCs 최대치를 구하고 이 물질이 100% 인체에 흡수된다고 가정해도, 전 제품에서 인체에 유해한 수준이 검출된 바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는 조사대상 10종의 생리대에서 국제암연구소 및 유럽연합이 규정한 발암물질, 생식독성, 피부자극성 물질 등 22종의 유해물질이 검출됐다고 밝힌 여성환경연대 측 주장과 정반대 결과다. 현재 생리대 유해성 논란은 한국 뿐 아니라 미국, 영국 등 해외에서도 진행 중인 사안이다. 독성물질에 대한 명확한 법적 기준치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소송이 시민단체가 진행하는 릴리안 피해자들의 위자료 청구소송에 맞불격이라는 시각이 많다. 앞서 여성환경연대 및 릴리안 생리대 사용 피해자들은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인당 위자료 청구금액은 최대 300만원으로 소송 1차 참여자가 3100명인 점을 감안하면 소송규모는 90억원이 넘는다.

국내에선 집단소송에서 승소한 사례가 거의 없다. 대기업과 집단 소송한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가 피해를 직접 증명해야 하고, 집단소송에 대한 기업 대응팀도 갈수록 치밀해지고 있다"며 "피해자가 수천명이 모이고, 재판부가 완벽하게 중립을 유지한다고 해도 기업을 상대로 승소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소송은 소비자들이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공동소송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2011년 시작된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폐질환으로 임산부와 영유아의 폐가 문제가 생겨 사망하거나 폐를 이식받는 사례가 급증한 사례가 원인이 됐다.

보건당국 조사결과 가습기 분무액에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가 사망자들의 원인인 것으로 조사됐다. 1994년 처음 출시된 가습기 살균제는 약 7년간 옥시레킷벤키저·롯데마트·홈플러스·애경·LG생활건강 등 다수의 생활용품업체에서 생산돼 연간 60만개 가량이 판매됐다. 이 사태를 추적중인 환경운동연합이 파악하고 있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6000명, 사망자는 약 1300명에 달한다.

해당 소송은 2011년 시작돼 2017년까지 6년간 지속됐다. 제조물책임과 관련된 다수의 민사소송이 아직 진행중이고, 인명피해에 대한 형사소송에선 대법원 판결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배상책임은 인정됐지만 제품의 안전성을 허가받고, 유해성을 감독할 의무가 있는 국가의 책임은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이 길어지면서 기업들이 조직적으로 증거인멸을 했으며, 파산하기도 해 실질적으로 배상을 받지 못하는 사례도 생겼다.

실제 서울중앙지법은 2015년 가습기살균자 피해자 A씨 등 13명이 제조업체인 세휴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제조업체에는 원고가 요구한 5억4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국가에 대해선 '증거부족'으로 기각했다. 국가배상법 제2조1항은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함에 있어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에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도록 한다.

재판의 쟁점은 ‘가습기 살균제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 성립 여부’와 ‘국가의 관리감독 의무 유무’다.

재판부는 원고가 사망 원인으로 제시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은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인데, 원고가 가습기살균제가 유해하다는 근거로 제시한 미국 환경보호청 보고서는 독성물질로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을 거론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국가가 CMIT와 MIT를 감독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당시 해당 물질에 대한 유해성 심사는 각 법령 규정에 따라 제대로 이뤄졌기 때문에 당시 기준에서는 국가가 가습기 살균제를 유해물질로 지정·관리하지 않은 것은 주의의무 소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특히 가습기 살균제는 감염병 예방이 아닌 가습기의 물때 방지 등과 같은 청소를 위한 용도였기 때문에 의약외품에도 해당되지 않아 공무원이 가습기 살균제를 의약외품으로 구분하지 않았던 사실도 업무상 과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심우용 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간질성 폐질환의 인과관계를 의심할만한 분명하고 객관적인 정황증거가 없다“며 ”국가가 관련 법령에 따라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을 확인해 판매를 중지할 의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인정할만한 증거도 달리 없다"고 결론냈다.

법원은 제조업체에 대한 형사처벌도 매우 소극적으로 해석했다. 제조물책임법상 제조업자는 제주물의 결함으로 인한 생명, 신체 또는 재산상 손해를 입은 자에게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대법원은 지난 1월 옥시레킷벤키저·홈플러스 등 가습기살균제 제조 판매업자 14명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등을 유죄로 인정했다.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는 징역 6년, 이 회사 연구소장 두명은 각각 징역 6년, 5년이 선고됐다. 노병용 전 롯데마트 대표에게는 금고 3년을 선고했다. 다만 존리 옥시 전 대표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법원이 살균제 성분의 유해성을 기업도 몰랐기 때문에 의도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재판이 길어지면서 피해자들을 뿔뿔히 흩어졌는데 기업 책임을 입증할 핵심적인 증거는 사라졌고, 공판과정에서는 수많은 관련자들이 진술을 번복해 혐의 입증이 어려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현행법은 가해행위와 발생한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 책임을 피해자에게 부담시키기 때문에 사실상 피해자로 하여금 법적 구제를 포기시키게 하는 결과를 야기한다"며 "법원이 제조업자의 책임을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보는 것 또한 현실적으로 공동소송을 어렵게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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