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이 증권사가 1호 발행어음 상품인 '퍼스트 발행어음'으로 모은 돈은 현재 약 9000억원이다.
당초 회사는 2017년 말까지 1조원을 조달하고, 올해에는 그 규모를 4조원대로 늘릴 생각이었다. 인기도 많았다. 출시 이틀 만에 5000억원이 몰리는 바람에 과열 우려로 판매를 잠시 중단하기도 했다.
이런 기세를 줄곧 이어갈 것으로 점쳐졌지만, 회사는 돌연 속도 조절에 나섰다. 초대형 투자은행(IB) 5곳 가운데 유일하게 발행어음업 인가를 받고도 판매액을 1조원 미만으로 묶어놓고 있다는 얘기다.
구체적으로는 원리금을 보장해야 하고, 모집액 가운데 절반을 벤처·중소기업에 투자해야 하는 점이 부담을 주었을 수 있다.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돈은 50%를 기업금융에 써야 한다. 애초 한국투자증권은 초기에 이 비율을 넘긴다는 전략을 세우기도 했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발행어음업 인가를 받았을 때 "은행권 자금 조달이 원활하지 않은 A등급 이하 저신용 기업에 대한 대출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모험자본 공급자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공모로 모은 돈이라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아직 사업 초기라 투자처가 제대로 확보돼 있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자금을 조달하면 되레 역마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발행어음 금리는 현재 2.3%다. 단순 계산으로 4%대 수익은 내야 운용 마진을 남길 수 있다.
원재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발행어음 관련 운용 마진은 1% 이상으로 예상한다"며 "위험관리 차원에서 손실 최소화에 초점을 맞춰 기업 대출을 실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발행어음 사업으로 수익을 내려면 자금을 제대로 굴릴 수 있는 노하우와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며 "지금은 만들어 나가는 단계라 발행액을 단기에 늘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중금리가 전반적으로 오르고 있는 점도 상품 경쟁력을 희석시킬 수 있다.
황세운 연구위원은 "아직까지는 발행어음 금리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며 "다만 시중금리 상승 속도를 감안해 어느 정도 유연한 수익률 제시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발행어음이 일찌감치 시장에 안착하려면 기업금융 비율을 비롯한 규제를 더 느슨하게 풀어줘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