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 무술년(戊戌年) 새 각오

2018-01-17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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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림 전국부장]

'진실이 뒤집힌 세상, 그 세상을 뒤집으려는 사람들'.

지난해 한 공중파 TV에서 방영된 드라마 홍보 문구다. 드라마 제목은 ‘조작(造作)’. 그해 7월 24일부터 9월 12일까지 약 두 달간, 32회 분량의 이 드라마는 사회 부조리를 파헤치는 역동적인 기자의 모습을 담았다. 극 중 대사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약한 사람들을 돕는 게 기자한테는 정의가 아니라 상식이라고."

내친김에 9년 전 '작전(作戰)'이란 제목의 영화도 떠올려 본다. 2009년 한국영화에서 처음으로 주식이라는 소재를 다뤄 큰 화제가 됐다. 인간의 숨겨진 욕망과, 그 욕망을 위해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렸다. 주식에 뛰어든 한 평범한 남자가 작전세력에 엮여 모든 것을 건 승부를 펼친다. 부실한 건설회사, '대산토건'을 작전주로 만드는 데 필요한 여론몰이 도구엔 씁쓸하게도 기자가 쓰였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진 판엔 눈먼 개미(개인투자자)의 돈이 몰려들었다.

가상의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드라마와 영화 속 배경이지만, 분명 현실에서도 일어난다.

<옳지 못했던 마녀사냥 여론재판, 최후는 '무혐의'>. 최근 우리 부서원이 작성한 기사 제목이다. 내용은 이렇다. 1년 전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기소된 세종특별자치시 한 어린이집 관계자들에 대해 대전지방검찰청이 '혐의 없음'을 내렸다는 것이다. 당사자는 억울한 누명을 벗었지만 여론재판에 모든 것을 잃었다. 어린이집에서 입수한 폐쇄회로(CC)TV 영상이 조작되거나 무분별하게 유포되면서 결국 해당 어린이집은 문을 닫았고, 교사는 직장을 잃었다. 당시 어린이집 관계자들은 진실을 애타게 호소했지만 묵살됐다. 시민사회단체까지 가세해 세종시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 사건은 여론에 떠밀린 짜깁기 수사의 종착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MBC가 새해 첫날 메인 뉴스 리포트에 자사 인턴기자를 일반 시민인 것처럼 인터뷰한 영상을 내보내 시청자들의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조작한 것’ 등 수백건의 비난 글이 쏟아지자 다음날 공식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아돌프 옥스 설즈버거가 1896년 인수한 이래 가족세습 경영체제를 이어온 미국 최고 권위 신문 뉴욕타임스(NYT). 새해 첫날 NYT의 발행인에 37세의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가 취임했다. NYT는 옥스 설즈버거 가문이 5대에 걸쳐 120년 이상 경영을 이어가는 새 역사를 썼다. 한 가문이 120년 이상을, 그것도 업계 최고의 자리를 지키며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도 드문 일이라 평한다. 하지만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다. ‘철저한 확인을 거친 팩트(사실)'다.

미 언론계와 학자들은 설즈버거 가문이 긴 세월을 이겨내고 최고의 신문이라는 경쟁에서도 승리한 원동력은 ‘언론 정도를 지킨 신념’ 이라고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30대 발행인 체제로 전환한 NYT는 디지털 전략 강화에 들어갔다.

드라마 ‘조작’의 홍보 영상엔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오금이 저리게 한다. ‘21세기 대한민국, 사람들은 기자를 믿지 않는다’, ‘팩트의 전장을 누비며 진실만을 추구하는 기자는 이미 전설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리고 또 이러한 글귀가 있다. "한 언론사에서 찾아낸 태블릿PC와 집요한 탐사보도가 어떻게 광화문의 촛불로 이어져 세상을 바꾸었는지 극적으로 목격했다"며 이를 ‘희망’이라고 했다. 여기서 언급된 태블릿PC는 'JTBC 태블릿PC'를 지목한 것으로 여겨진다. 제작진은 1년이 훌쩍 지나 또다시 진위 논란에 빠진 이 태블릿PC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하다.

2018년 무술년(戊戌年) 황금 개띠 해를 맞이해 언론인으로서 다짐해본다. ‘기본과 원칙, 상식’을 지키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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