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면 누구나 모름지기 어느 정도 공감 능력을 갖고 태어나지만, 우리 중 일부는 성장 환경과 교육에 따라 공감의 예민함을 잃어간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63)는 13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메디치미디어)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공감은 길러지는 게 아니라 무뎌지는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개념을 국내에 들여오는 등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 온 학자이자 환경운동가가 '경영'이라니. 최 교수는 "고작 3년2개월을 한 기관의 수장으로 지낸 사람이 남들에게 경영 경험을 얘기한다는 게 쑥스럽고 부끄럽고 민망했다"면서도 "살다보면 나처럼 뒤늦게 졸지에 기관의 운영을 책임지는 상황에 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고, 그들의 황당함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책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국립생태원장 임명장을 수여한 뒤 당시 환경부 장관은 '1년에 30만 명의 관람객을 유치할 것'을 바랐다. 그는 곧바로 "서울에서 3시간 반이나 걸려야 갈 수 있는 곳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관람객을 불러들일 수 있겠느냐,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3년여가 지난 뒤 그에겐 '제법 성공한 CEO'라는 평가가 내려졌다. 개장 첫해인 2014년 한 해 100만 명의 관람객이 생태원을 찾았고, 이후 매년 거의 100만 명 유치를 달성했다. 생태원이 생긴 지 2년 반 동안 '깡촌' 서천군에 새로 문을 연 음식점도 250여 개나 된다. 임기를 마치기 며칠 전엔 서천군수로부터 명예 군민증도 받았다.
최 교수가 책의 소제목처럼 '얼떨결에 성공한 CEO'일지는 몰라도 그에겐 분명한 경영 십계명이 있었다. △군림(君臨)하지 말고 군림(群臨)하라 △가치와 목표는 철저히 공유하되 게임은 자유롭게 △소통의 삶의 업보다 △이를 악물고 듣는다 △전체와 부분을 모두 살핀다 △결정은 신중하게, 행동은 신속하게 △조직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치사하게 △누가 뭐래도 개인의 행복이 먼저다 △실수한 직원을 꾸짖지 않는다 △인사는 과학이다 등이 그것이다.
최 교수는 "적어도 조직의 리더에게는 적재적소를 넘어 과재적소(過材適所)를 제안한다"며 "능력이 넘치는 사람이 조직을 맡으면 주어진 임무는 임무대로 완수하면서 남는 시간에 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진딧물의 개성도 관찰·분석하는 마당에 인간의 개성을 인사에 반영하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침대가 과학이라면 인사야말로 관찰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과학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사건부터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 프란스 드 발의 '공감의 시대'를 번역했다는 그는 "'7시간의 행적' 등에 대한 논란이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이 그 시간 동안 정상적인 일과를 봤다는 것 자체가 비인간적이고 용서받기 힘든 일"이라며 "공감 능력이 무뎌지지 않게 하는 교육이 우리 사회에서 이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최 교수의 책은 여느 서적들과는 달리 책 말미에 '편집자 노트'를 실어 눈길을 끌었다. 김현종 메디치미디어 대표는 이에 대해 "그 동안 편집자들의 노고가 과소평가됐고, 편집자 본인도 책이 잘 되면 자신을 드러내려 하고 잘 안 되면 뒤로 숨으려는 경향이 있었다"며 "앞으론 책의 전면까지는 아니더라도 편집자를 당당히 소개하는 공간을 만들 계획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