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배철현의 아침묵상] 20. 건축建築

2017-10-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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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1. 건축과 우르-남무의 지구라트
인생은 건축이다.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을 설계하고 짓는 건축가다. 그러나 나는 나의 감동적인 집을 짓기 위해 고유한 설계도면을 가지고 있는가? 게을러서 다른 사람이 그려놓은 설계도면을 훔쳐보고, 그 집을 건축하려고 허둥대지 않는가? 미래에 내가 거주할 집은 지금 이 순간 내가 의도한 상상을 설계를 통해 물질로 옮겨놓은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건축(建築)이라고 부른다.
 
인류는 '건축'이란 단어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수메르 시대에 살았던 '우르-남무'라고 불리는 왕이다. 기원전 21세기 우르-남무는 오늘날 이라크 남부 지역 '우르'에 새로운 왕조 '우르 3왕조'를 건립했다. 그는 신전 건축을 통해 수메르 르네상스를 일으켰다. 그는 이곳에서 춘분 때 모든 수메르인들을 모아 신년의례를 행하고 우르의 주신인 달신 '난나'에게 제사들 드렸다. 이 건축물이 '지구라트'다. 지구라트라는 말은 후대에 등장하는 바빌로니아인들이 만들어낸 용어로 '쌓아올린 건축물'이란 뜻이다.
 
우르-남무는 자신이 건축한 지구라트를 '에-테멘-니-구루'라고 불렀다. 이 수메르 문장을 번역하면, '주춧돌(테멘)이 숭고한 아우라(니)를 풍기는 집'이란 의미다. 수메르어 테멘(temen)은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는 우주의 배꼽으로, '다른 장소와는 구별된 장소'라는 의미다. '주춧돌'을 의미하는 이 최초의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로 수출돼 델피 신전의 거룩한 경내를 의미하는 단어 '테메노스'(temenos)가 됐다. 주변과는 구분된 장소이기 때문에, 그곳에 주춧돌이 존재한다. 인간의 그런 행위가 이곳을 거룩하게 만든다. 인간이 정성을 들여 그곳을 거룩하게 만들면, 그곳에서는 다른 장소와 구별되는 내적인 힘인 '아우라'가 생긴다.
이 지구라트는 고대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기원전 6세기 바빌론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와 나보니두스가 다시 원상태로 복구를 시도했다.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은 1980년대 스스로 현대판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되기를 꿈꾸며, 이 지구라트를 보수했다. 지구라트엔 중앙 바닥에서 시작해 하늘로 향하는 64m 계단이 있다. 현재 남아있는 지구라트는 그 기초 부분으로 원래 높이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지구라트의 너비는 45m, 높이는 30m이다.
 
2. 우르-남무의 지구라트 건축 비문
영국 고고학자 레오나드 울리는 이곳을 1930년대에 발굴했다. 그는 이곳에서 우르-남무가 남긴 지구라트 건축에 관한 수메르어 비문을 발견했다. 기원전 21세기로 추정되는 수메르어 비문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엔릴(대기 신)의 장자, 난나(달 신)를 위하여, 그의 왕이며, 용감한 장수, 우룩도시의 주인이며 우르 도시의 왕, 그리고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인 우르-남무가, 난나가 사랑하는 신전인 '에-테멘-니-구루'를 건축했다. 그는 난나를 위해 신전을 원래 있어야 하는 자리로 회복했다." 

우르-남무는 '건축하다'라는 단어로 '두'(ù)라는 수메르 동사를 사용했다. 수메르어 동사 '두'는 일반적으로 '만들다; 건축하다; 짓다'라는 의미다. 우르-남무는 '두'를 마지막 문장에서 '건축'이란 의미로 부연 설명한다. "그는 그것을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ki)로 되돌렸다(gi4)" 수메르인들에게 건축이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 그 원형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수메르 단어 '키'가 의미하는, 원래 있어야 할 자리,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란 무엇인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키'는 후대에 등장하는 셈족인들의 문명인 바빌로니아, 아시리아에 영향을 주어, 건축뿐만 아니라, 법률, 천문학, 의학과 같은 다른 학문에도 영향을 주었다. '키'는 사람이 아닌 만물이 당연히 있어야 할 장소다. 우르-남무는 지구라트를 건설하면서 자신은 그 장소를 찾았고, 벽돌을 이용해 그 장소를 '재건축'한 것이다. 그들은 건축을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원칙을 원래 자리에 되돌려 놓는 일이라고 여겼다.
 

[사진=우르-남무가 건설한 지구라트]


3. 아키-텍처(architecture)
'건축'이란 영어단어 아키텍처(architecture)는 두 단어 '아르키'(archi)와 '텍처'(tecture)의 합성어다. '텍처'는 인도-유럽어 어근 '텍'(*tek-)에서 파생한 단어로 '엮다; 얽어 짜다; 한데 꼬이게 하다; 생산하다; 저술하다; 자식을 낳다’라는 뜻이다. 라틴어 단어 '텍툼'(엮어서 만든 지붕), '티구눔'(나무나 돌을 이용하여 지붕을 떠받치는 빔), '텍스투스'(씨줄과 날줄을 엮어 만든 텍스트)가 모두 이 단어에서 파생했다. 그리스 단어 '틱토'(남녀가 하나가 돼 자식을 낳는 행위), '테크네'(서로 이질적인 것을 엮어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기술)도 이 단어의 자식들이다.

기술(技術)이란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자연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요소들을 융합하는 솜씨다. '기술'을 의미하는 그리스 단어 '테크네'가 흔히 '예술'을 의미하는 라틴어 '아르스'(ars)로 번역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텍'을 물질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사람을 그리스어로 '텍크톤'이라고 부른다. 텍크톤이 후에 '나무를 잘 다루는 사람; 목수’로 한정돼 사용됐는데 원래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사람이다. 시인, 운동선수, 의사, 저자, 기획자, 건축가가 모두 ‘텍크톤’이다. 텍크톤은 새로운 경지를 열어 일가를 이룬 사람으로 ‘아티스트’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1세기에 팔레스타인에 살던 예수는 ‘목수의 아들’이었다. 이 의미는 자신의 삶에 있어서 최선을 찾아 몰입해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삶을 추구하라고 영감을 주는 자란 의미다. ‘텍크톤’이 단순 기술자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수련하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원칙이 있다. 이것이 ‘아키텍처’의 첫 번째 요소인 ‘아르키’다.
 
‘아르키’는 인도-유럽어 어근 ‘에르그’(*h₂ergʰ)에서 파생했다. 이 어근의 첫 번째 의미는 ‘시작’(始作)이다. 생명의 시작은 혼돈의 상징인 어머니의 자궁에서 시작한다. 태아는 세상으로 온전한 신체를 가지고 태어나기 위해, 그 곳에 반드시 일정 기간 거주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으로 나와 스스로 걷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에르그’의 두 번째 의미는 ‘새로운 길로 인도하다; 다른 사람을 이끌다’ 혹은 ‘자기 자신에게 주인이 되다’이다.

‘아르키’는 신기하게 수메르 ‘키’와 같이,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들이 자신들이 마땅하게 있어야 할 장소이며, 모든 생물들이 마땅하게 최선을 다해 완수해야 할 임무다. 건축은 그런 우주의 원칙을 솜씨 있게 엮는 행위다. 그런 건축물은 시대를 초월해 아직도 영감을 준다. 유대인들의 우주창조 이야기인 창세기는 고대 히브리어로 이렇게 시작한다. "베레쉬쓰(be-reshith) 바라 엘로힘···" 우리는 흔히 이 문장을 “태초에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번역한다. 그러나 이 문장의 더 나은 번역은 “신이 처음을 가지고 우주를 창조했다”이다. 기원전 2세기 한 학자가 이 히브리 문장을 그리스어로 ‘엔 아르케’(en arche)로 번역했다.
 

[사진=지구라트 건축에 관한 수메르어 비문]


4. 인생이라는 건축
나는 인생이라는 멋진 집을 짓는 건축가다. 내가 지어야 할 집은 내 삶을 위한 철학이다. 그 철학은 나에게 지금 감동적이며, 여전히 10년 후에도 감동적인 철학이어야 한다. 그 원칙이 없다면, 내 집은 흉물이 돼 곧 철거해야 할 것이다.

내가 마땅히 거주해야 할 장소는 어디인가? 내가 지을 인생이라는 집의 원칙은 무엇인가? 나는 인생이라는 건축 재료를 가지고 예술품을 만들 것인가? 혹은 보잘 것 없는 철거물을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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