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변방별곡] 농업에 투자하라

2017-10-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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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작가]


'먹방', '놀방'이 대세다. 어쩌다 TV를 보면 '백선생'이 소개하는 맛집 탐험이나 요리강좌에 이어 이젠 생업까지 책임져주는 푸드트럭 창업까지 온통 음식프로그램 일색이다. 인기 있는 음식프로그램이 방송되면 그날 메뉴에 따라 치킨집이나 족발·보쌈집 등의 매출도 덩달아 오른다고 한다.

음식에 질려서 채널을 돌리면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세계테마기행'이나 '걸어서 세계 속으로' 같은 오래된 여행프로그램이 점잖은 교양프로그램이라면, 요즘 여행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을 지구 반대편에 가서 살아보게 하는가 하면 심지어 그들의 아내까지 가출(?)시켜 여행을 떠나보내기도 한다.
그러니 누군들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겠는가?

사상 최장의 황금연휴였던 지난 추석연휴. 인천공항이 개청 이래 사상 최다 승객과 사상 최대의 면세점 일매출, 일주차 대수·일주차 수입 최대 등 온갖 진기록을 양산한 것도 다 이런 상황이 빚어낸 결과다. 정부까지 나서서 '멀쩡한' 평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서 소비와 여행 조장의 공신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황금연휴를 만들어 국내 소비를 진작시켜 경기를 끌어올리는 수법은 중국이 1990년대 이후 제도화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노동절·국경절·춘절이라는 3대 황금연휴에 단오절과 중추절까지 가세, 소비 조장에 나서고 있다.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중국에서는 황금연휴를 전후한 주말에 대체근무를 하고 학생들조차 주말에 대체등교를 해서 황금연휴에 쉬는 날만큼 주말을 반납한다는 점이다. '황금연휴를 줄 테니 주말에도 일하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금세 논란이 뜨거워질 수 있는 사안이다.

문제는 긴 연휴의 후유증이다. 이미 통계로도 드러나고 있지만 10여일의 공백으로 전반적인 생산활동이 크게 위축되면서 생산지수가 크게 떨어졌고, 황금연휴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평소보다 신용카드를 더 많이 사용한 사람들의 호주머니는 결제일이 다가올수록 가벼워질 것이다.

그런 단기적인 후유증도 문제지만 인천공항이 세운 진기록 뉴스를 해외토픽처럼 건성으로 흘려들은 자영업자나 일용직 노동자 혹은 미취업생들의 마음은 더 타들어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수년째 취업을 하지 못해 알바를 전전하는 청년실업층은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고, 조기퇴직·중도퇴직한 직장인들이 자영업으로 내몰리는 현실은 냉혹하다. 게다가 자영업자의 80%는 3년 안에 문을 닫는다는 흉흉한 뉴스는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다. 내년도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노동·창업시장의 명암을 극명하게 가를 수도 있다.

먹방, 놀방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공통점은 '먹거리'라는 점이다. 맛있고 건강한 밥상을 찾아 떠나는 것이 요즘 대세 키워드인 셈이다. '삼시세끼'와 '섬총사', '아빠 어디가' 등의 주 무대는 농어촌이다. 며칠씩 시골에 내려가서 시골생활을 체험하게 하고 그곳에서 나는 먹거리로 조리를 해서 서로 함께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아침 출근길 정체부터 시작해 퇴근까지 과도한 경쟁과 스트레스에 지친 도시인들은 TV를 보는 것만으로도 일시적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TV 속 농어촌은 직접 가서 살고 싶은 욕망이 일 정도로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다. '아버지의 고향' 혹은 이런저런 인연을 맺은 농어촌으로 귀향해서 제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일궜다는 스토리도 심심찮게 각종 매체를 통해 소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학교를 졸업하고 학교가 있던 도시를 떠나 고향으로 내려와 농사를 짓거나 아버지와 함께 소, 돼지 등의 가축을 기르는 젊은이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중 한 청년은 서울에 있는 한 대학의 축산과를 졸업하고 고향에 내려와서 소를 기르고 있다. 같은 과 출신의 여자친구가 '전공을 살려' 농협에 취업했지만, 그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농장을 만든 그는 이미 50여 마리의 소를 사육하는 중견축산농으로 자리잡았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소를 키우지만 아버지가 하는 방식으로만 소를 기르지는 않는다.

물론 대기업에 취업해서 깨끗하고 번듯한 사무실에 출근해서 연봉 1억원의 샐러리맨 생활을 추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용기만 있다면 그럴 만한 배짱과 용기를 발휘해보는 것이 더 낫다는 얘기다.

농업은 더 이상 도시에서 낙오된 패잔병들이 돌아가는 그런 곳이 아니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농업은 더 이상 예전의 1차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농업은 생명과학이다. 농업은 우리의 건강한 밥상을 책임지는 생명산업이자 1·2·3차 산업을 포괄하는 융복합산업이다. 땀을 쏟은 만큼 정직하게 보답하는 것이 농업이다. 적당하게 일을 하면 아예 답을 하지 않는 것이 '땅'이다.

농업이 가르치는 1차적 교훈은 '당신이 일한 만큼 정직하게 보답한다'는 것이리라. 잘나가는 프랜차이즈 치킨집이나 푸드트럭에 현혹되지 않고, 고달픈 일용노동자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농업에 투자해서 승부를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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