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손'의 역할을 기계에 넘긴 것은 언제부터일까.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촉발된 산업혁명? 아니, 간석기와 토기를 만들며 농사를 짓고 살던 신석기 시대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인간은 무엇을 만들고 기록하는 일 따위의 대부분을 기계에게 넘겨줬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합리적' 이유가 더러 있기도 했지만, 인간은 자신의 손을 쓰는 게 귀찮았고, 힘들었고 또 때론 번거로웠다.
무언가의 '결핍'은 그것을 더 강하게 강조하거나 필요하게 만든다. 일본에서 시작돼 우리나라에도 최근 불기 시작한 '메이커' 열풍은 그 방증이라 할 수 있다.
메이커는 다양한 난도의 조립품을 하나하나 완성해 가거나 서점, 쇼핑몰 등지의 D.I.Y.(Do It Yourself) 코너에서 자신만의 물건을 만드는 사람 또는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더 넓게는 이러한 문화 자체를 지칭하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이 터득한 만드는 법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가졌고, 이런 흐름을 '메이커 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메이커들은 '손을 움직이는 행동이 자신들에게 삶의 풍요를 가져다주고, 그것은 곧 힐링으로 이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과학 관련 서적 출판의 선두주자격인 동아시아(대표 한성봉)는 최근 무크(mook)지(단행본과 잡지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부정기간행물)인 '메이커스: 어른의 과학'(이하 메이커스)을 선보였다. 이는 일본 가켄교육출판의 '大人の科學'의 정식 한국어판으로, 과학이 일상에 어떻게 스여드는지부터 '일식'을 보러 미국으로 떠난 사람들의 여행기, 우리나라 최초의 천문대인 소백산 천문대에서의 천문관측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창간호 표지모델의 '영광'을 안은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은 "메이커는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라며 "(과학은)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하고, 왠지 어렵게 느껴지지만 혼자 따라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거기에 새 아이디어를 덧붙여나가면 되는데, 메이커스가 그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메이커스가 처음으로 제공하는 물건은 '플라네타리움'(planetarium, 천체투영기)이다. 大人の科學 시리즈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제품(2005년 나온 구형 모델까지 합치면 100만 개 이상 판매)이었던 플라네타리움은 반구형의 천정에 별자리, 행성 등을 투영해 보는 장치로, 부모가 함께하는 교육 도구이자 분위기 있는 실내 인테리어 소품으로 입소문을 타 왔다.
메이커스 편집을 담당하는 이지경 씨는 지난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창간 기념 간담회에서 "플라네타리움 조립에 필요한 것은 드라이버 한 개 뿐이고, 두 시간여만 집중하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며 "아날로그 카메라 등 메이커스가 앞으로 선보일 것들은 단순한 관상용, 즉 '예쁜 쓰레기'가 아니라 실제 사용가능한 물건들"이라고 소개했다.
메이커스가 주창하는 것은 '한국 메이커 문화의 마중물'이다. 메이커 운동의 확산은 물론이고, 메이커들이 모이고 소통하는 장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한성봉 대표는 이날 간담회에서 "단순히 이윤 남기는 것을 바랐다면 메이커스를 내놓지 않았을 것"이라며 "한국 과학 기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기록하고 새로운 교육·문화 콘텐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과학은 손으로 배우는 것!'이라는 모토를 내세운 메이커스가 과학의 문턱을 얼마나 '즐겁게' 낮출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