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칼럼] 중국의 '유화 제스처' …뭘 의미하나

2024-11-2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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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중국학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중국학]

슈퍼 트럼프의 귀환으로 시작될 트럼프 2.0시대, 러·우 전쟁에 러시아 지원군을 파병한 북한, 제5차 중동전쟁의 위험성을 내포한 이스라엘과 이란의 대치, 미국에 굴복할 뜻이 없다며 외연 확장에 나선 중국, 핵 무력 완성과 전쟁 준비 총력 집중을 강조하면서 한국을 위협하는 김정은, 각국의 동상이몽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가운데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이 최고조다.

이 가운데 최근 중국의 대한국 유화적 공세와 조치들이 다양하게 펼쳐져 관심을 끌고 있다. 사실상 2016년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제) 배치 이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한·중 갈등은 코로나19라는 희대의 전염병을 만나 더 소원해졌다. 현 한국 정부는 점증하는 북핵 위기에 대처하는 유일 수단으로 한·미 관계의 복원과 동맹 강화에 초점을 맞췄고, 한·미·일 3각 공조도 강화 추세다. 중국은 이를 중국 견제를 위한 아시아판 나토(NATO) 결성으로 인식하였고, 한국 정부도 국익 원칙 기반 외교를 설파하며 호혜 평등의 양자 관계 구축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는 한·중 교류 및 상호 연계성에 타격을 입혔다.
이 같은 경색 국면 타개를 위해 양국 정상은 2022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동아시아와 국제사회의 자유·평화·번영 증진과 북한의 도발 억제에 중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였고, 시진핑 주석은 양국은 한반도 문제에 공동이익이 있다면서 의사소통 확대와 정치적 신뢰 구축을 강조했다. 올 5월에는 리창(李强) 총리가 참석한 한·일·중 3국 정상회의가 열렸고, 11월 16일에는 페루에서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미 고위급 방문 교류나 1.5 트랙 전략대화가 재개되는 분위기 속에서 중국은 11월 1일, 내년 12월 말까지 한국인에 대한 15일간의 비자 면제 조치 시행을 발표했다. 또 신임 주한 중국대사에 전임 국장급 대사보다 한 단계 '급'이 높은 다이빙(戴兵) 현 유엔 부대표를 내정했다. 또 페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북·러 밀착을 의식해 과거와 달리 북한을 두둔하지 않았다.

중국의 이러한 접근은 환영할 만한 일이며, 의도적으로 거부할 필요는 없다. 당연히 향후 양국 교류의 전반적 확대도 기대된다. 그러나 외교 행위와 정책은 늘 상대적이므로 중국의 의도와 관계없이 우리 입장에서 체크해봐야 할 내용도 분명히 있다.

우선, 중국의 접근 강화는 일단 트럼프 2.0에 대비해 한국의 대미 경사를 선제 관리하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미국의 대중 압박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트럼프 2.0 체제가 일부 분야에서 미국과의 연대를 강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트럼프의 선별적 고립주의가 동맹에 대한 경시나 지나친 요구로 이어지거나, 트럼프 2.0이 과도한 미국주의로 흐를 경우, 미국과 갈등하는 국가들에 접근해 강력한 제조업 능력과 경제적 영향력을 이용해 미국의 동맹을 와해시키는 접근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또, 북·러 밀착으로 중국의 대러시아·대북한 영향력이 감소한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담보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과의 관계 강화는 북한에게는 견제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또, 북·러 간 군사 기술 협력은 중국 입장에서는 크게 불편하다. 북한의 핵 고도화와 군사 과학 기술 발전이 장기적으로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감소시킬 것이고, 북한이 베이징의 말을 듣지 않을 공산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비자 면제 조치와 관련해서도 유의할 점이 있다. 본래 비자는 상호주의를 강조하지만, 이번 중국의 대한국 비자 면제 조치는 일방적 조치였다. 당연히 이는 그동안 불편했던 중국 방문과 관광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 비자 면제가 비즈니스, 관광, 친척 및 친구방문, 국경 통과의 경우로 제한돼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비자 목적 이외의 활동은 자칫 중국이 작년 7월 1일부터 시행하는 반(反)간첩법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론 긍정적인 면도 존재한다. 주한 중국대사에 유엔 다자외교 무대를 경험한 인물을 지명한 것은 과거 한반도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협력의 폭을 넓히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페루 정상회담에서 윤 대통령이 북한의 지속적인 군사 도발,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에 대해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당부하자, 시 주석은 ‘한반도의 긴장을 원하지 않는다’는 원론적 입장을 피력하는 데 그쳤지만, 북한을 두둔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도 ‘한국에 있어 미·중 양국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혀 최근의 양국 간 유화적 분위기를 지원하는 모양새다. 혹시 한국 정부의 대중국 외교 기조가 바뀐 게 아닌지 궁금증마저 자아내고 있다. 아마 이는 한국 정부가 한·미 동맹을 복원해 강화했고, 안정적인 한·미·일 삼각공조 구축을 기반으로 중국과의 안정적인 관계 개선 설정을 추구하겠다는 뜻일 것이다. 외교 기조가 변한다기보다는 능동적 실용 외교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면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중국도 한국을 향한 기본적인 외교 스탠스를 바꾸기는 어렵다. 분명한 대미 연대 의식이 있는 북·중·러 관계를 고려하면 북·러 밀착으로 중국이 곧바로 멀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안보는 유일 동맹인 미국과의 관계가 기본이지만, 경제적 차원에서는 중국의 역할도 있게 마련이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양국에 대한 레버리지를 확보하려면 미·중과 선별적으로 거래할 요소를 찾아 능동적 입장에서 양측에 우리 의사를 분명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

 
강준영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교수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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