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중화인민공화국은 1921년 창당한 중국 공산당이 거대 정당 국민당과 28년간 지난한 투쟁을 거쳐 1949년 수립한 사회주의 국가다. 오늘날 세계 2대 경제체로 G2로까지 불리며, 경제적 업적을 바탕으로 세계적 국가로 성장한 오늘날 중국의 위상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중국의 유일 정치 실체인 중국 공산당이 자칫 중국의 미래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공전의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 체제는 당이 정치와 정부를 영도하고, 군사력을 통수하는 전형적인 당국체제(黨國體制·party-state system) 국가로 당 최고지도자의 현실 인식과 당의 정책 집행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독특한 체제를 운영한다. 개혁·개방 이전 시기 30년으로 통칭하는 마오쩌둥(毛澤東) 시기 30년은 사회주의 구현을 위한 맹목적인 정책 집행으로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시기였다. 특히 이념에 경도돼 1966년부터 10년간 계속된 문화대혁명은 중국 전체를 '정치 운동화'하는 소용돌이에 빠뜨리기도 했다. 빈곤에 허덕이면서 사회주의 이론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던 중국을 실사구시라는 실용주의로 이끈 지도자가 바로 덩샤오핑이다.
덩샤오핑은 당내 일부 반발을 무릅쓰고, 중국 발전을 위해서는 교조적 사회주의의 이론적 속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상 해방론’을 기초로 ‘빈곤은 사회주의가 아니다’를 외치면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용주의 노선 및 ‘생산력 우선 발전론’을 정착시켰다. 개혁·개방의 논리적 근거 확립과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초석을 다지는 사회주의 초급 단계론을 제시했고 개혁·개방 백년 불변론을 주창하여 발전 논리의 지속성도 확립하였다. 개인 숭배와 정치 제일주의로 점철된 마오쩌둥 시대를 극복하고 ‘경제 제일주의’를 모토로 하는 ‘중국식 사회주의’ 모형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의 탁월한 리더십과 경제 발전에 초점을 맞춘 적절한 정책적 전환은 빈곤에 시달리던 중국인들의 자신감을 회복시켰으며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1989년 톈안먼 시위대에 유혈진압을 명령할 만큼 공산당 권위에 대한 도전은 절대 허락하지 않았던 철저한 사회주의자였다. ‘경제현대화’를 통해 현대화된 사회주의 국가 건설, 즉 사회주의 현대화가 그의 최종 목표였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가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는 영원한 잠재력의 국가 중국을 현실적 힘을 가진 국가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미 대약진 실패 후 제1차 경제 조정기였던 1963년 발전을 위해서는 이념에 구애받지 말라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실용주의자다. 무엇보다 혁명 1세대로서 권력 일선에 나서지 않고 개혁파와 보수파 간 이념 분쟁에 조정자적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그를 개혁·개방의 조타수(操舵手)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로써 중국 현대화의 최고 가치는 생산력 발전, 국력 신장, 인민의 생활 향상에 초점이 맞추어지게 되었고, 이러한 그의 발전론은 1997년 ‘덩샤오평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공산당의 지도이념이 되었다.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 연속성은 후야오방(胡耀邦), 자오즈양(趙紫陽)을 거쳐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미국 등 서방의 견제가 증가하고, 내부적으로는 시장경제의 내부 속성에 따른 지역 격차, 빈부 격차를 비롯한 사회 양극화 문제 등 소위 발전주의의 부작용이 잉태된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중화주의는 과도한 민족주의로 해석되기도 하며, 공산당 일당 체제는 민주와 자유를 억압하는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현대 중국을 이끄는 시진핑 체제는 2012년 출범했다. 이미 국제사회는 ‘중국식 사회주의’로 세계적 국가로 성장한 중국이 서방 질서에 협력하지 않는 세력이 될 것임을 우려하면서 다양한 견제를 시작했다. 특히 미·중 전략 경쟁을 마주한 시진핑 체제는 중국식 독자 노선을 ‘중국식 현대화’로 명명하고 정면 대결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개혁·개방 시기가 외부와 협력해 중국 국내 문제, 특히 경제 문제 해결에 천착했다면, 시진핑 체제는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앞세워 중국의 힘을 전 세계에 투영하려는 ‘중국몽’을 강조한다. 마오쩌둥은 중국을 세웠고, 덩샤오핑이 중국을 잘살게 했으니 이제는 ‘현대화된 과학기술로 무장된 세계 최강국 건설’을 목표로 ‘강한 중국’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국가 목표의 설정이나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과 그 결과는 철저히 중국의 몫이다. 얼마 전 중국 공산당 20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20기 3중전회) 개막을 맞아 관영 신화통신이 게재했던 시진핑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을 '덩샤오핑에 이은 탁월한 개혁가'라고 지칭한 장문의 글이 돌연 삭제됐다고 한다. 중국 경제가 공전의 어려움을 겪고,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덩샤오핑을 이은 ‘신개혁가 시진핑’이라는 강조가 자칫 국내 정치·사회적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식만을 강조하고 중국 특수성만을 강조하는 시대는 지났다. 중국에는 과거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세계적 국가로 발전하기 위한 기초를 다진 스승 덩샤오핑이 있다. 덩샤오핑이 어떠한 현실 인식을 통해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내부 정치세력을 설득했으며 국제적인 협력을 도모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시진핑 체제 역시 국내적 발전은 물론 국제사회와 함께 호흡하기 위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에 필적하는 시진핑식 국제 접궤(接軌) 체계 수립이 필요해 보인다.
강준영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교수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