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의 양적 확대에서 벗어나 질적 확대라는 수출 고부가가치화를 추진해야 한다."
유병규 산업연구원(KIET) 원장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는 한국 수출에 대해 낙관적인 자세를 갖기보다 대외 요인이 크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수출 고부가가치화 추진 △새로운 수출산업 발굴 등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산업분야 국책연구기관 수장이 바라보는 한국 수출은 핑크빛만은 아니었다.
유 원장은 "최근의 수출 증가세는 지난 2년간의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와 세계경기 회복세, 그리고 글로벌 정보기술(IT)경기 회복 등으로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지만 상반기와 같은 두 자릿수 증가세가 지속되진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수출의 불안요소 4가지
유 원장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한국 수출의 불안 요소를 설명했다. 유 원장은 "최근 수출 확대는 석유관련제품과 선박에서 높은 수출증가율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유가상승이라는 일시적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며 "이는 하반기 들어 유가가 안정되면 수출 증가세도 둔화될 것임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특징이 있다"며 "세계경기 회복과 4차 산업혁명 진행 등으로 반도체시장 전망은 여전히 밝은 편이나, 반도체산업의 높은 변동성은 수출의 안정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일부 산업의 수출만 급증했다는 점에서, 수출 확대에 국내산업의 경쟁력 향상보다 유가상승이나 세계경기 회복 등 대외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도 함께였다.
특히 세계경기 회복에도 불구하고 무선통신기기, 가전, 자동차부품 등의 수출은 여전히 감소했다는 점에서 해외생산의 확대와 해외 현지의 부품조달 증가 등이 우리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내놨다.
◆새로운 수출 산업 발굴, 내수와의 선순환 구조 확립 등 시급
한국 수출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바라보기보다 대비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유 원장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반도체, 디스플레이, 조선 등의 경우 중국이 맹추격하는 현실에서 뒤이을 새로운 수출산업의 발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확산되는 통상마찰에 대한 적극적 대응과 함께 아세안, 아프리카 등 새로운 주요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확산 등을 통해 새로운 경제지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양적인 수출규모의 확대에서 벗어나 질적인 수출의 확대라는 수출의 고부가가치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수출품목의 고부가가치화, 첨단 부품소재 사업 육성 등으로 글로벌 가치사슬의 효과적인 구축을 통해 해외생산과 수출 간의 원활한 연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무엇보다 수출과 내수의 선순환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한다.
유 원장은 "수출 증가 속에서도 국내경기가 본격적인 회복국면에 접어들지 못하고 있다. 이는 수출확대가 내수증가를 통해 국내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잘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해외투자 기업의 국내 이전, 수출기업의 국내 투자 증가 등을 통해 수출이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대중(對中) 수출 의존도 여전히 높아···“고급 소비재·첨단 부품소재 품목 육성해야”
우리나라의 수출 1위 국가는 중국이다. 그러나 최근 대중 수출이 감소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 대중 수출은 지난해 9.3% 감소해 전체 수출 감소 5.9%보다 더 많이 감소했고, 올해는 7월까지 11.5% 증가했는데 전체 증가율 16.3%보다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유 원장은 여전히 한국의 대중 수출의존도는 매우 높은 편으로, 계속 중국 수출을 유지하기 위해 수출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 원장은 "지난해 전체 수출감소에도 불구하고 홍콩에 대한 수출이 7.8%나 증가했고, 올해도 17.7% 증가했다"며 "홍콩을 포함할 경우 대중 수출은 지난해 31.7%, 올해 7월까지 29.5% 등으로 여전히 높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의 생산기지가 중국에서 베트남 등으로 이전하며 중국 수출 부품소재의 많은 부분이 베트남으로 대체되고 있다"며 "또 일부 소비재 제품, 자동차부품 등이 사드영향을 받는 상황을 고려하면, 우리 상품이 여전히 중국시장에서 선전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그가 생각하는 대중 수출의 문제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유 원장은 "지난 7월까지 우리의 대중 수출은 중간재가 77.2%, 자본재가 19.0%이고, 소비재는 3.3%에 불과해 여전히 대중 수출은 중간재 및 자본재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안전하고 품질이 좋은 고급 소비재 품목을 개발하고, 중국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는 첨단 부품소재 품목을 육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한미FTA 관련 자동차와 철강 문제 삼을 것 확실"
최근 미국이 요구한 한미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는 아무런 합의 없이 종료됐다. 미국의 개정협상 요구에 우리가 한미FTA 재협상에 앞서 효과분석이 선행돼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유 원장은 미국이 다음 단계의 행동을 취할 때까지 주어진 시간을 우리의 요구사항을 마련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 원장은 "미국 측이 한미FTA의 효과분석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우리가 그것을 빌미로 재협상을 끝까지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중요한 것은 이번 회의때 보여준 것처럼 미국 측의 요구에 우리의 국익을 희생하면서까지 호락호락 따라가지는 않는다는 자세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개정협상이 개시되면 미국이 문제삼을 업종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유 원장은 "미국 측이 자동차와 철강분야를 문제삼을 것이 확실한 만큼, 해당 업종의 관련 협회와 긴밀히 협력해 우리의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미국이 원산지 규정이나 우리의 환경규제 등을 문제삼을 가능성이 높아 외국산 원자재나 중간재의 실제 사용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우리의 환경규제가 미국의 환경규제보다 까다로운 측면이 있는지 등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 미국 측이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할 것으로 예상되는 첨단 산업 및 문화 산업의 지적재산권 문제 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일부 서비스 업종의 국내 관련 법규 및 규정에 대한 검토도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유 원장은 "대내적으로도 재협상에 대한 확고한 태도와 분명한 입장표명을 통해 한미FTA 재협상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확산으로 혼란을 야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 정책, 경제적 약자에 대한 지원과 보호에서 혁신과 경쟁 중심으로 탈바꿈해야"
문재인 정부의 중소기업 육성기조에 대해 유 원장은 중소기업 정책의 기본이념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원장은 "한국경제가 지속성장하려면 강한 중소기업이 많이 나와야 한다"며 "국내 중소기업이 강하고 혁신적으로 변신하려면, 중소기업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소기업 정책이 경제적 약자에 대한 지원과 보호에서 이제는 경제성장의 주역이 되도록 혁신과 경쟁중심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며 "한계기업에 대한 일방적 지원을 중단하고, 혁신력과 경쟁력을 지닌 기업이 규모와 일자리를 늘려가도록 시장원리에 의한 유인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유 원장은 중소기업 규모와 유형별로 정책을 구분하고 세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 원장은 "소상공인의 경우, 영세성을 탈피하고 생존율을 높일 수 있도록 업종별 전문성과 협업화를 높이는 대책이 필요하다"며 특히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중기업과 중견기업의 경우,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를 과감히 철폐해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경제가 성장하려면 현대, 삼성과 같은 세계적인 대기업을 100개 이상 만든다는 야심 찬 중소기업 활성화 정책을 구성하고 실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병규 산업연구원장은?
△1960년 서울 출생 △성균관대 경제학과 학사·석사·박사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전략본부장·경제연구본부장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초빙연구원 △한국경제학회 경제교육위원 △국민경제자문회의 지원단장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지속발전분과장 △제20대 산업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