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호의 동하한담(冬夏閑談)] 인정중독과 관심병

2017-08-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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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하한담(冬夏閑談)

박연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인정중독과 관심병.

마을사랑방 같은 곳에서 툭하면 불거지는 언쟁의 대부분은 ‘나를 뭘로 보고 이러느냐’는 자존심 갈등이다. 노인들이지만 불길이 그렇게 번지면 누구도 말리기 힘들다고 한다.
어느 한문강좌의 단골 할머니 한분은 입만 열면 ‘우리 XX대 OO과 동창회가 있어서···’ 또는 '동창생 누가 무슨 일이 생겨서···'라는 등 갖은 핑계를 입에 달고 산다. 무슨 놈의 동창회 모임이 그리 잦은지···. 또 다른 모임의 어떤 할아버지는 어느 대학 배지를 양복 깃에 정성껏 늘 달고 다닌다. 유통기간 만료가 가까워진 인생에 그게 그리 소중한 건지 측은해 보인다.
그러나 이건 주책 없는 늙은이들만의 추태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현상이고 너나 없이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출판기념회나 작품발표회 전시회 같은 경우에도 인정중독증이 두드러진다. 자신이 쓴 글이나 작품을 많은 사람이 읽고 봐주길 원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 욕구가 지나쳐 애걸수준에 이르면 보는 사람이 민망스럽다.
우리 모두 타인의 인정과 관심을 바란다. 부부, 부모 자식 간은 물론이며 친구를 비롯한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전혀 문제가 없는 기본적이고 당연한 욕구다. 그것이 개인을 발전시키는 동력이자 사회 및 국가에 이바지하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도를 벗어나면 병폐가 심각하다.
보통 사람들의 인정중독 후유증은 제한적이지만, 소위 높으신 분들이나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그 살상범위가 거의 무제한이다. 각종 행사장 좌석 배열부터 국가 중대사 처리과정에까지 어김없이 나타나는 그들의 서열의식과 인정욕구 암투는 심각하다. 그게 지연, 학연, 혈연 그리고 속물근성과 뒤섞이면 치명적이다.
누구나 주목받는 삶과 타인의 인정을 목마르게 바란다. 거의 본능이다. 따라서 건전하고 공정하게만 추진하면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왜곡되면 뮌하우젠 증후군 (Münchausen syndrome), 파에톤 컴플렉스(Phaethon complex) 같은 질병을 유발하게 된다.
이런 증세가 2500년 전 공자시대에도 심했는지 논어 맨 앞에서 그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으면 군자가 아닌가”(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呼: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 학이 1장)라며 내면의 충실을 강조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 말고, 내가 남을 몰라보는 것을 걱정하라”(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불환인지불기지, 환부지인야 - 학이 16장). 즉 남의 평가에만 매달려 처량하게 살지 말고 오히려 남을 인정하면서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라는 강력한 당부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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