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볜 통신] 썰렁했던 한·중 수교 25주년

2017-08-2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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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란 옌볜통신원]

한·중 수교가 어느덧 25주년을 맞이했지만, 수교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도시인 옌볜(延邊)은 조용한 분위기다.

옌볜한국인(상)회 측에 따르면, 23일과 24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측 기념행사와 주중 한국대사관 주최 한·중 수교 기념행사에 참가한 것을 빼고 옌볜 현지에서는 따로 행사가 없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해마다 이맘때면 간담회와 경제포럼, 대학생 웅변대회, 한·중 민족시 심포지엄, 체육대회 등 각종 기념행사가 열렸다. 5년마다 옌볜 경제문화인 한국고찰단이 한국을 방문했는데 이번에는 무산됐다. 국가적 차원의 기념행사를 제외하고, 지방 단체는 모든 대외 기념행사가 ‘올스톱’됐다. 한한령(限韓令)이 아직 풀리지 않은 것이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가 가장 크다는 게 지역사회의 중론이다.

중국 정부로부터 옌볜시가 한국 관련 일체 보도와 행사 금지를 지시를 받았다는 소문도 들린다.

옌볜 지역에는 현재 8000여명의 한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최근 냉각된 한·중 관계로 많은 교민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비자 문제가 까다로워져 거주 절차에 불편함을 겪거나 중국 내 생활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로 인해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줄어들면서 기업이 위축되고 한국국제학교의 학생 수도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세대 문제도 있다. 현재 옌볜 사회 주축을 이루는 세대는 중국 이주 3·4세대다. 이들은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교육을 받고 중국에서 성장, 생활했다. 한국에 친척들이 있어 끊을 수 없는 윗세대에 비해 한국에 대한 애착이 없는 편이다. 그들에게 있어 한국은 우리와 같은 문자와 언어를 사용하고 조상이 같은 ‘이웃 나라’일 뿐이다.

1992년 수교 전까지는 옌볜은 한국과의 왕래가 거의 없었다. 한국에 친척이 있어도 소문을 내기 어려웠을 정도였다. 오히려 1980년대 후반까지 북한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그러다 수교 이후 조선족에 대한 출입국수속이 간편화되면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옌볜의 조선족 젊은 세대들은 어릴 때부터 한국 드라마, 가요, 댄스 등 문화를 접해 한국이라는 사회에 익숙하며 한·중 간의 교류와 왕래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들은 수교 전과 초창기 교류가 원활하지 못해 브로커를 거쳐 한국에 가서 각종 노동으로 힘겹게 생활비를 벌던 윗세대의 고충을 모른다.

이런 가운데서도 옌볜한국인(상)회의 활동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교민행복 옌변사랑’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이 단체는 옌볜에 진출한 한국기업인, 유학생들로 구성된 사회단체다.

1996년도에 설립돼 지난 21년간 재중국 한국인과 옌볜 지역사회를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옌볜한국인(상)회 관계자는 “올해만큼 냉랭했던 수교 기념일은 없었다”면서 “움츠린 교민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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