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삶과 꿈] 동북아 비극 시대에 민중의 지팡이가 되다

2017-07-3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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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혁, 조국과 가족과 사랑하는 이를 위해 싸우다

[사진=차일혁기념사업회 제공]

남정옥(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문학박사)=차일혁(車一赫) 경무관은 왜 그렇게 악착스럽게 빨치산을 토벌하려고 했을까? 그것은 조국과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서 전쟁의 고통에서 하루라도 빨리 해방시켜 주기 위한 차일혁의 뜨거운 동포애와 인간적 배려에서 나왔다.

 일제강점기 1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조국을 등지고 중국대륙에서 외롭게 독립운동을 경험했던 차일혁은 누구보다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 조국이 없는 식민지 백성의 설움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역만리(異域萬里)에서 조국을 그리며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무한한 인내와 극한 한계를 시험하는 극단적 체험이었다.

 차일혁은 중국대륙을 횡행(橫行)하며 독립운동을 할 때 가장 그리웠던 것은 가족이었다. 가족들과 제대로 된 이별의식도 갖지 못한 채 훌쩍 중국으로 떠나야만 했던 차일혁에게 가족은 그리움, 그 자체였다. 한민족의 정서 속에서 가족이 차지하는 부분은 필설(筆舌)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타향에서 그것도 타국에서 가족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밤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만도 고향과 가족 생각에 울컥하는 감정을 억제할 수 없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한(恨)도 많고, 정(情)도 깊은 우리 민족의 오랜 정서(情緖)였다. 그만큼 우리 민족에게 가족이란 단어는 떼려야 떼어낼 수 없는 슬픔과 애환 그리고 기쁨을 함께 나누는 운명공동체이자 애틋한 그리움의 대명사였다.

 차일혁은 빨치산토벌대장 직책을 수행하면서 많은 이들을 사랑하고 아꼈다. 여기에는 빨치산들을 토벌할 때 함께 싸운 전우이면서 부하들인 경찰부대 대원들도 있었고, 토벌지역의 주민들도 있었고, 그리고 차일혁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전시(戰時) 이 땅의 불쌍한 사람들이 차일혁이 사랑하고 보호해야 될 대상들이었다. 차일혁은 이들을 위해 악착같이 싸웠다. 그것은 차일혁의 마음속에 국민들을 지극히 사랑하고 아끼는 위민(爲民)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차일혁은 제18전투경찰대를 창설한 후 만든 ‘토벌대의 노래’를 작사하면서도 조국과 가족 그리고 사랑을 중심 단어로 해서 ‘노래 말’을 지었다. 이 노래 말 속에는 차일혁의 개인적인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고, 토벌대가 무엇 때문에 왜 싸우는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제공하고 있다. 차일혁이 만든 다음의 ‘토벌대의 노래’ 가사(歌詞)가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조국을 위하여 피를 바치고, 가족을 위하여 땀을 바쳐라! 아내여, 이 세상을 굳세게 살아주오. 당신과 만날 때 백년해로 합시다. 초개같은 청춘아! 초개같은 청춘아! 사랑을 위하여 눈물을 바쳐라!”

 

[사진=차일혁기념사업회 제공]

차일혁이 만든 ‘토벌대의 노래’는 대원들이 빨치산 토벌을 나설 때 즐겨 불렀다. 이 노래를 부르면 “왜 우리가 이 전쟁을 위해 싸우고 있는가!”에 대한 목적의식을 심어주는 듯했다. 그래서 대원들은 이 노래를 즐겨 부르며, 언제 죽을지 모를 전투에 용감히 나섰다. 조국과 가족을 생각하며, 왜 싸워야 되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깨닫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차일혁은 영국 수상 처칠(Winston S. Churchill)의 애국심을 높이 평가했다. 제2차세계대전시 독일군이 영국본토에 대해 대규모 공습을 할 때, 처칠은 굴하지 않고 전쟁에 이길 수 있다는 굳센 신념으로 독일의 히틀러(Adolf Hitler)에 맞서며 싸워 이겼던 대영제국의 위대한 애국자였다. 영국의회에서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를 연설하는 자리에서 처칠은 영국 국민들에게 “조국을 위하여 피를 바치고, 가족을 위하여 땀을 바치며, 사랑을 위하여 눈물을 바치라!”며 호소했다. 영국 국민들은 처칠의 연설에 열광했다. 그리고 대독전선(對獨戰線)에 너나 할 것 없이 나섰다.

 차일혁은 처칠의 연설문을 인용하여 ‘토벌대의 노래’ 말을 만들었다. 처칠이나 차일혁은 비록 싸우는 대상은 달랐지만, “누구를 위해 싸우고, 또 무엇 때문에 싸워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처칠은 영국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감동적인 연설을 했고, 차일혁은 부하대원들의 전의를 고취시키면서 “왜 싸워야 되는지”에 대한 목적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토벌대의 노래’ 말을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은 비록 시간과 공간은 달랐지만, 어려운 전쟁 상황에서 어떻게 전쟁을 치러야 되는가를 공유하며, 이를 승리로 연결시켰던 전쟁영웅들이었다.

 차일혁은 부하들이 부르는 ‘토벌대의 노래’를 들으며 복막염 수술 이후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아내와 막내아들을 생각하곤 했다. 겉으로는 그렇게 강인하게만 보였던 차일혁도 이 노래 말 속에 들어있는 가족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을 적시곤 했다. 그럴 때마다 차일혁은 자신을 추스르며 토벌대장의 자리로 돌아왔다. 토벌대장인 자신이 그럴진대 어린 부하대원들은 더욱 가족 생각이 나질 않겠는가 하는 마음에서다.

 차일혁이 눈물이 많은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차일혁은 부하나 동료의 죽음 앞에서도 자주 눈물을 흘렸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을 때엔 얼굴을 돌리고 울었고, 주변에 사람이 적으면 목 놓아 통곡하곤 했다. 그는 대원 하나하나를 피를 나눈 동기간(同氣間)처럼 마음속으로 아꼈다. 그런 까닭에 전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대원들을 잃으면, 마치 그것을 자신의 수족이 잘려 나가는 것보다 더 애통(哀痛)해 했다.

 그런 점에서 차일혁은 눈물과 웃음과 정열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빨치산 토벌대장이었다. 차일혁의 부하 대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조국과 가족과 사랑을 위해 싸우는 차일혁을 부모나 집안의 형제처럼 더 믿고 따랐다. 차일혁의 토벌대는 그런 분위기속에서 대원들 간에 신뢰를 다지며 강한 전투력을 발휘했다. 조국을 위하고, 가족을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싸우는 그들에게 어떤 적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런 차일혁 부대는 전투를 거듭할수록 강해졌다. 빨치산들은 차일혁 부대가 왔다는 말만 들어도 위축됐다. 이것이 바로 “조국에는 피를, 가족에게는 땀을, 사랑을 위해서는 눈물을 바치라!”는 차일혁 리더십의 정수(精髓)였다. 차일혁과 처칠이 자국의 국민들로부터 전쟁영웅으로 대접받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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