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골탑과 소프트웨어 교육
글을 몰라 여러 번 구박을 받고 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내 자식에게는 이런 수모를 겪게 하지 않으리라. 소도 팔고 논도 팔아 공부시켰다. 개인적 욕망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한국사회의 문자 해독률이 높아졌다. 우골탑은 이때 나온 유행어다. 글을 알아야 어디 가서 무시당하지 않고 동네 면서기도 될 수 있었다. 모두가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이런 갈등이 없었다. 시대가 바뀌었다. 경험과 지혜만으로는 더 이상 세상을 설명할 수 없다. 누군가가 먼저 그 변화를 준비했고 준비한 사람들이 세상의 주인이 되기 시작했다. 문자를 해독하고 이해하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세상이 되었다.
개인적 불만에서 출발했지만 문자를 알아야 했던 이유는 명확하다. 사회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회는 새로운 표현양식을 요구한다. 자급자족과 물물교환 시스템에서는 최소한의 신뢰로 공동체가 유지된다. 글이 없어도 말로 많은 것이 가능했다. 산업사회가 본격화되면서 이제 신뢰는 계약으로 바뀌게 되고 말은 복잡한 문장으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교수, 변호사, 기자 등이 사회의 리더로 떠오르게 됐다. 자격증은 농경사회에서는 없던 시스템이었다. 복잡한 계약서를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 돈도 벌고 인정도 받기 시작했다. 고시 열풍이 계속 이어지는 이유 중의 하나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계속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 이 글의 시대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두 가지 의견이 있다. 하나는 글의 시대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보는 견해다. 다른 한쪽에서는 이제 서서히 글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직은 전자의 주장이 강하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외부에서 강한 충격이 없으면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다. 별 문제가 없는데 굳이 애써 새로운 것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동의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투자를 해야 된다. 리스크도 감안해야 된다. 결과물이 예측대로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거 저런 거 고민하기 시작하면 귀찮아진다. 답이 안 나온다. 그냥 편하게 살자고 한다.
소프트웨어 교육이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필수화된다.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중학교에서는 2018년부터 시작되고, 초등학교 5·6학년은 2019년부터 단계적으로 받게 된다. 중학생들은 정보과목을 통해 34시간 이상, 초등학생은 실과과목을 통해 17시간 이상 받는다. 여러 논란과 우려 끝에 내년부터 시작된다. 두 가지 견해가 충돌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교육을 하나의 기술 교육으로 이해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이미 많이 있는데 왜 굳이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교육시켜야 하는지 납득하기 힘들었다. 진보적 교육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반대가 더 심했다. 가뜩이나 공부할 것도 많은 어린 학생들의 부담이 가중된다는 것이 반대 주장의 요지였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인성, 협동심, 시민의식, 창의성이라고 주장했다.
소를 팔고 논을 팔아 공부시킨 이유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다. 부모의 미래가 아니라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다. 불투명한 미래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문제 해결 능력이 있어야 한다. 어떤 문제가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예측은 예측에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과 같은 네트워크 시대를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 능력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이것이다. 자신의 생각, 의지, 희망을 자신의 표현방식으로 드러내야 한다. 규격화된 말이나 글이 아니다.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직접 만들 줄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어른 세대에게는 이런 능력이 없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소프트웨어를 어느 정도 활용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금년 7월에 열린 1회 소프트웨어 사고력 올림피아드에 나왔던 중학생 문제를 예로 들어 보자. 질문은 이렇다.
“토끼와 거북이가 서로 경주하여 목표지점에 먼저 도달하면 이기는 교육용 게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려고 한다. 이 게임 진행에 필요한 다양한 환경을 설정하고 게임을 보다 흥미롭게 하는 방법을 기록한 다음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하는 새로운 게임 시나리오를 작성하시오. “
이 문제에 정답은 없다. 자신의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고 텍스트, 이미지, 영상, 오디오, 캐릭터를 만들거나 활용해서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 낸다.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 시공간을 초월해도 되고 상상 속의 괴물이 등장해도 된다. 이미 만들어진 이야기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왜 이런 게임이 필요하냐고 물을 수 있다. 답은 이렇다. 이건 게임이 아니다. 답이 없는 하나의 질문이다. 여러 가능성을 찾아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 미래는 정형화된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텍스트를 공부한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답만 가능하지만 미래는 결코 그렇지 않다. 이제 예측 가능한 시대는 서서히 지나고 있다. 소프트웨어는 특정 기술이 아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표현양식이다. 글을 몰라 서러움을 당할 때 자식을 공부시킨 사람도 있고 체념하고 순응한 사람도 있다. 선택은 본인이 하지만 결과는 미래 세대에 영향을 미친다. 내년부터 시작되는 소프트웨어 교육, 미래 세대를 위한 첫 게이트가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