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우리의 제조업이 기술의 패러다임이 변해가는 미래에도 지금처럼 우리 경제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될 것인가. 결론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이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변화는 그 기반이 제조능력이 아니라 소프트웨어(SW) 기술이다. SW 산업의 국내 산업 비중은 10% 미만, 수출 비중은 1% 미만이다. 지난해 기준 세계 SW 시장 1조966억 달러에서 한국은 113억 달러(1.03%) 점유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외국 SW 벤더들이 국내시장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지표는 SW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되고 있는 새로운 시대에 당면한 우리 기업, 우리나라 경제의 위기를 대변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SW 역량을 갖춘 인력과 기업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SW 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기업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강력한 제조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SW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하드웨어(HW) 중심의 산업정책이 주를 이루면서 SW가 제조업의 부속물처럼 여겨지다 보니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으며, SW로는 돈을 벌기가 쉽지 않다 보니 좋은 인재가 모여들지 않아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지금의 환경에서는 실력 있는 SW 벤처기업이 성장해 대기업이 되고 글로벌 기업이 되는 것은 코끼리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려운 현실이다.
인력 수급 면에서도 문제가 적지 않다. 중소기업의 낮은 임금구조, 열악한 근무 환경은 유능한 SW 엔지니어의 안정적인 확보와 유지를 어렵게 한다. 능력 있는 기술 인력이 있긴 하지만 SW 전문 중소기업이 확보할 수 있는 숫자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2018년부터 코딩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겠다는 교육정책은 환영할 일이지만 갈 길은 멀기만 하다.
SW가 경제 패러다임 변화의 본질이라는 점을 인식한 각국 정부의 노력도 점차 증폭되고 있다. 미국은 SW 중심의 선순환적 산업구조가 이미 구축돼 세계 경제 및 기술 변화를 주도하고 있으며, 이스라엘과 아일랜드의 경우 1990년대부터 국가 산업으로 소프트웨어 산업을 육성해 오늘날 세계 SW 산업의 강자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가까운 일본과 중국도 주당 1시간 이상 소프트웨어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국가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GE가 “2020년까지 SW 기업이 되겠다”라고 천명했다. 이 회사는 개발자만 올해 말까지 2만명으로 확충한다. GE는 경쟁 상대를 이미 SAP, IBM 같은 정보기술(IT) 기업으로 지목했다. 이외에도 아마존과 지멘스도 과감한 투자로 이미 SW 기업으로 변화하기 위한 기반을 갖춰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많은 게 뒤처져 있는 우리나라의 SW 산업 경쟁력은 위기 수준이다. 그렇다고 이를 만회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SW 기업과 인재들의 역량이 우수하다는 점은 적절한 정책적 노력이 가해질 경우 언제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토양이 건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SW 정책을 단순히 기존의 산업 정책 범주 안에서 마련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SW 정책이 국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100년 대계’의 핵심이라는 인식 하에서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판을 혁신적으로 짜야 한다. 공정경쟁 환경 조성과 지원으로 능력 있는 기업이 합당한 보상을 받고 새로운 기업들이 실력만큼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환경 조성은 가장 기본이다. 나아가 SW 산업이 제대로 커져야 우리 경제에 미래가 있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국가 전체의 투자 리소스를 과감하게 재조정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