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 두 달 만에 가까스로 정치의 정상궤도에 진입한 모양새다.
정부조직법개정안과 추경안이 국회에서 다뤄지기 시작했고, 내각 구성도 머잖아 마무리될 분위기다.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걸 감안하면 두 달여의 진통이 오히려 짧을 수 있다.
문제는 진통기간에 보여준 여야의 구태다.
정치발전에 대한 희망의 싹을 찾아볼 수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장관 후보자 발표→각종 의혹 제기→청문회보고서 채택 일부 불발→임명 강행→국회 파행.
피곤한 도식이 반복되는 가운데 오가는 언어 또한 그때나 이제나 동일하다. 한쪽에서 “불법·부도덕·자격미달”이라고 몰아붙이면, 다른 쪽은 “당시의 관행, 능력은 탁월”이라고 맞받는다.
“임명 철회, 자진 사퇴”를 요구하면 “국정 발목 잡기”라고 역공한다.
입장이 바뀐 여야가 약속이라도 한 듯 예전 상대방의 언행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코미디다.
오늘의 여당은 어제 야당일 때 자신들이 뱉어내던 욕설을 고스란히 되돌려 듣고 있다.
어제의 여당은 자신들이 그렇게 원망했던 ‘반대’를 역시 똑같이 재연한다.
독선·오기·불통···.
야당 시절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전임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가장 많이 날려 보낸 비판이다.
이 쓴소리 비수가 이번엔 문 대통령 쪽을 향했다.
강경화 외교장관 임명 때다. 어제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을 비롯한 야당들이 민주당의 공격 용어를 한 글자도 틀리지 않은 채 되돌려 보낸 것이다.
여권은 여론조사 결과가 강 장관 임명을 지지하는 등 전임 정부의 독선·불통과는 전혀 다르다고 억울해한다.
여론을 들먹이는 게 옹색하긴 하지만 임명 강행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니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더 나아가 강 장관의 활약상이 호평을 받으면서 임명에 대한 정당성이 힘을 얻는 모양새다.
그러나 야당일 때 그들이 ‘독선·오기·불통’을 비판하던 논리와 강도를 되돌아보면 문제는 달라진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당시 이·박 두 대통령에게 요구한 게 뭔가. 대통령이 직접 나서라는 주문 아니었던가.
대통령이 야당인 자신들을 자주 만나 대화하고 협상해달라는 채근이었으며, 잘못했으면 사과하고 양보하여 타협하자는 게 골자였다.
그 주문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문 대통령이 ‘협치’를 강조할 때 기대가 컸다.
야당 시절 주문하던 대로 진정한 대화 정치에 나설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협치는커녕 오히려 ‘반(反)협치’라는 공격을 받고 있으니 안타까움이 크다.
특히나 문 대통령은 인사와 관련해 위장전입 불가 등 자신이 제시한 5대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해명이나 사과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는데 문 대통령은 입을 다물고 있다.
최근 야당이 반대하는 장관 후보자 중 한명이 자진 사퇴했다.
이어 청와대 비서실장이 나서 민주당 대표를 대신해 문제 발언을 대리사과했다.
나름대로 ‘정치’를 작동시키려는 시도로 읽혔고 반응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걸론 부족하다. 보다 통이 커야 한다.
대통령이 팔을 걷어붙이고 1대1 대화에 직접 나설 수는 없는 것일까.
대통령이 야당 지도자들을 두루 만나 진심으로 설득하고 양보해가며 타협을 이끌어내는 새로운 경지의 협치. 그런 새 정치를 진정 보고 싶다.
이참에 야당 쪽에도 주문하고 싶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에 확실한 ‘허니문 기간’을 설정해 주면 어떨까.
새 정부가 공약한 방향대로 예산안 및 정부조직법개정안은 큰 틀에서 화끈하게 ‘협조’해주는 방안이다.
인사 청문회도 국회는 의견제시 선에서 그치고 임명 여부는 대통령에게 맡기자는 거다.
책임지고 국정을 운영토록 틀을 갖춰준 뒤 일정 기간이 지나고부터 실정을 추궁하면 된다.
우리의 정치 시스템은 선거 결과에 따라 승자가 국정을 책임지고 이끌어가는 제도다.
승자의 구상과 기획대로 국정 운영이 이뤄지는 게 순리이며, 그러기 위한 초기 체제 정비는 필수요소다.
새 정부가 체제를 갖추기도 전에 흔들린다면, 이는 정권적 차원의 문제를 넘어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명박 정부 때 출범하자마자 불거진 광우병 파동이 대표적인 예다.
야당의 입장에선 대통령과 집권 여당을 흠집냄으로써 얻는 반사이익에 이끌리기 쉽다.
그러나 그런 얕은 정치 셈법으론 감동 정치를 연출할 수 없다.
우리 야당은 ‘숲’보다 ‘나무’를 더 열심히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사안별로 보면 반대하는 논지가 설득력 있고, 흥분하는 이유 또한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건마다 반대하다 보니 ‘반대를 위한 반대’요, ‘국정 발목잡기’로 비쳐지기 십상이다.
여당 땐 그런 야당을 향해 “숲을 보라”며 힐난하더니 야당이 된 뒤론 그 미운 짓을 그대로 되풀이한다.
그리곤 평생 야당만 할 것처럼 행동한다.
그 틀을 깨자는 거다.
협조하고 양보하는, 전혀 예상 밖의 통큰 정치를 선보인다면 큰 박수를 받지 않겠는가.
다시 집권했을 때를 상정하고 행동하면 길이 보일 것이다.
‘올챙이적 생각 못하는 개구리’의 오만함도 문제지만, ‘개구리 될 생각 못하는 올챙이’의 미숙한 떼쓰기 또한 볼썽사납다.
본격화되는 새 정부의 적폐 청산 작업에 발맞춰 정치 적폐물 청소작업도 활발하게 이뤄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