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공관이 역사상 막걸리를 가장 많이 소모하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6월 1일, 취임 인사차 여야 정당을 순방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총리 공관이 생긴 지 얼마나 된다고 ‘역사상’을 따지는지, 하필 ‘막걸리’만 소모하는지, 좀 거슬리긴 한다. 그래도 새 정부, 새 총리의 의욕과 진정성이 담겨 있어 썩 기분 나쁜 얘기는 아니다. 청문회에서 한바탕 혼쭐이 난 끝에 어렵사리 인준 절차를 통과한 이 총리는 이날 이후 줄곧 ‘협치’를 강조해왔다. 총리 공관의 막걸리는 여소야대 정부에서 야당을 잘 설득해서 국정 현안을 풀어내는 윤활유 격일 터이다.
그로부터 달포가 지났다. 지금 우리 국정은 어떤가. 새 대통령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G20 정상회의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는 자부심이 넘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두 달여 만에 정권교체에 따른 국제무대에서의 공백을 훌륭히 메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내치에 이르면 완전히 다른 그림이다. 특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현안들이 수두룩하다. 새 정부의 첫 조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정부조직법과 추가경정예산안은 언제 처리될지, 과연 실현 가능할지도 모르는 형편이다. 오죽하면 G20 출장에서 돌아온 직후인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막상 귀국해 보니 국회 상황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는 푸념을 털어놓았을까. 문 대통령은 당초 이날 강행하려던 국방부와 노동부 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연기하고 “추경과 정부조직 개편만큼은 야당이 대승적으로 국가를 위해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쯤에서 되돌아 보는 것이 총리 공관의 막걸리다. 과연 총리 공관의 막걸리는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소모되고 있는 것일까. 그러지 못하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 고서 한비자(韓非子)에 구맹주산(狗猛酒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에 술을 잘 빚는 사람이 주막을 차렸다. 그런데 통 손님이 오질 않아서 가득 빚어놓은 술이 시어버렸다. 고민 끝에 찾아간 동네 어른에게서 이런 충고를 들었다 “당신이 키우는 개가 사나우면 손님이 피해가니 술이 시게 마련”이라고. 총리 공관의 막걸리가 제 아무리 맛있어도 여야 정치인들이 손님으로 드나들지 않으면 시어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총리 공관에서 손님을 멀어지게 만드는 맹구(猛狗)는 무엇일까. 인간일 수도 있고, 정책이나 이념 같은 무형의 존재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정권에서도 구맹주산의 고사가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3년 전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을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을 움직이는 실세의 존재 여부가 큰 관심을 끌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지도부와의 오찬 자리에서 “청와대에 실세가 없으니까 (내가 키우는) 진돗개가 실세라는 얘기가 있다” 는 농담을 던졌다. 참석자들은 대통령의 흔치 않은 농담에 박장대소했다. 그런데 결과는 어땠는가. 지금 진행 중인 국정농단 재판은 청와대에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 같은 맹구들이 들끓고 있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친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청와대의 술이 시어버렸고, 결국 정권이 붕괴되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한비자는 구맹주산의 고사를 전하면서 나라에도 사나운 개가 있다고 설명했다. 사나운 간신배들이 군주를 둘러싸게 되면 현명한 신하가 피해가니 정사를 제대로 펼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정권 획득에 공헌한 무리들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사나워지게 마련이고, 그들에 둘러싸인 집권자의 실패 확률은 높아지게 된다. 문재인 정부에서만큼은 맹구가 사라지길 기원한다. 그리하여 총리공관이든 청와대든 막걸리가 시어버리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