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미 기자 = 17일(현지시간)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을 위한 로드맵을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가 구체화된 것으로, 미국의 무역적자를 축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미국과 FTA 개정 협정을 앞둔 한국에도 본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로이터 등 주요 외신들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이날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나프타 재협상 목표가 담긴 17쪽 분량의 문서를 공개했다. 미국과 가장 가까운 이웃국들과의 무역에서 미국의 적자는 줄이고 고용은 늘리는 방향으로 조항을 수정하거나 추가한다는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운동 당시부터 누차 강조했던 보호무역주의 공약이 정책으로 옮겨진 것이라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나프타 재협상은 이르면 내달 16일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그 밖에도 무역에서 이익을 보기 위해 자국 환율을 조작하는 행위를 "적절한 장치를 통해 방지한다"는 내용도 눈에 띈다. WSJ와 로이터는 환율 조작 금지의 경우 캐나다와 멕시코보다는 주로 아시아 무역 상대국들과의 거래에서 거론됐던 이슈라고 지적하면서, 나프타를 본보기로 향후 이들 국가와의 무역협정 개정에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지난 4월 지정된 미국의 환율관찰대상국에는 중국, 일본, 독일, 한국, 스위스, 대만 등 6개국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로이터는 "캐나다와 멕시코는 환율조작국으로 여겨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리스트에서 이런 언급을 한 것은 한·미 FTA 수정 협상과 같은 미래의 무역 협상을 위한 본보기를 만든 것일 수 있다"고 보도 했다.
나프타 재협상 상대국인 멕시코와 캐나다 측은 우선 겉으로는 23년이나 된 나프타를 현실에 맞게 개정할 수 있는 기회라며 환영했다. WSJ에 따르면 멕시코 경제부는 성명을 통해 "이번 계획은 협상 대상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면서 공식 재협상을 준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캐나다의 프릴랜드 외무장관 역시 나프타를 선진화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며 환영 입장을 전했다. 다만 그는 "캐나다의 국익과 가치를 지키겠다"면서 향후 재협상 과정이 순탄치 않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CBC 등 캐나다 매체들도 캐나다가 나프타 재협상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나프타 19장 유지를 목표로 하는 만큼 이를 두고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예상했다. 앞서도 캐나다산 연질목재에 미국이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뒤 캐나다가 보복 조치를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져 나프타 재협상 과정에서 양국 무역 갈등이 한층 고조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무역협상을 고친다고 해서 미국의 무역적자가 감소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채드 보운 선임 연구원은 블룸버그 통신에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 적자 감축에만 골몰해 협상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현 상황은 무역 정책이나 협정의 변화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를 '메이드 인 아메리카' 주간으로 선호하고 보호무역을 통한 미국 우선주의를 다시 한 번 천명했다. 그는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산 제품 홍보 행사에서 카우보이 모자, 야구 배트, 트랙터, 소방차 등 미국적 향수를 자극하는 미국산 물건들을 둘러보면서 미국의 산업과 노동자를 보호하겠다고 강조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역사에서 많은 대통령들은 우리의 경제와 우리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산업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그리고 그 상당 부분은 국경에서 온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행사를 시작으로 미국 제조업 부흥 행보를 이어간다. 19일에는 '미국 제조업 부흥 선언'을 발표하고 제조업 지원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미국 매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제조업 살리기를 강조하면서 나프타뿐 아니라 한·미 FTA 등 앞서 비판해 온 다자·양자간 FTA 재협상 요구에 대한 발언의 강도를 더 높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민주당과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언론들은 이방카 트럼프 브랜드의 제품들은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 주간 선포는 위선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