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승일 기자 =“건설업 현장 등 사업장에서는 위험을 찾는 일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위해 요소를 미리 알아야 위험한 행동을 안 하게 되거든요. 위험을 알면 대처하기도 쉽습니다.”
이영순 안전보건공단 이사장(71)의 이 말은 공단의 설립 취지와 맞닿아 있다. 안전사고가 발생하기 전, 철저한 교육과 예방을 통해 인명 피해를 막는 것이 공단의 핵심 역할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연상이 되는 사건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안타깝다. 타워크레인은 말 그대로 높은 곳에 올라가 작업하는 것이어서, 절대 근로자 혼자 작업을 해서는 안 된다.
안전을 점검하고 사고 위험요소를 제때 확인하는 동료 근로자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혼자 작업을 하다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채 크레인을 가동하다 참사가 벌어졌다.
5월1일 경남 거제에서만 사망 6명, 부상 25명, 22일 경기 남양주에서 사망 3명, 부상 2명, 이어 23일 서울 강서구에서도 사고가 났다.
작업 매뉴얼만 제대로 숙지했으면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는데,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타워크레인 사고예방은 우선 작업지휘자를 지정한 뒤 설치·조립·해체 순서 등이 포함된 작업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를 제대로 지키고 이행하는지, 자재 입고시 균열 등의 이상 유무 등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특히 타워크레인 작업시 가장 빈번하게 사고가 발생할 때가 설치, 상승, 해체작업을 할 때다.
해당 근로자는 반드시 상응하는 자격을 보유해야 한다. 지정 교육기관의 교육 이수 여부도 반드시 확인해 유자격 근로자가 작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높은 곳에서 일하는 고소작업자는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작업반경내에는 인원과 작업을 통제해야 한다. 공단은 최근 타워크레인 작업에 ‘위험경보’를 발령했다."
▲최근 발생한 사고를 보면, 재해를 입은 근로자 중 다수가 하청업체 소속이다. 그 원인은?
"대부분의 하청업체는 경제적인 여력이 없다. 안전 투자가 쉽지 않고, 안전 담당 전문인력도 부족해 안전관리에 어려움이 많다.
작업 현장에서도 현장 상황이나 위험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에 원청업체가 정해놓은 작업 일정이나 공사 기간에 맞춰 작업을 진행하다보면 안전관련 규정이나 규칙을 지키기도 쉽지 않다.
이런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 하청업체에서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실제 하청업체 근로자 사망비율은 2014년 39.9%, 2015년 42.3%, 2016년 42.5% 등 매년 늘고 있다.
공단이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대상으로 ‘공생협력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프로그램은 모기업이 하청업체의 유해·위험요인을 적극 개선하도록 유도하고, 나중에 평가를 통해 우수 사업장에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매년 참여 기업이 늘고 있고, 지난해 994개 모기업과 8584개 협력업체가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협력업체의 재해비율은 매년 11%이상, 사망만인율(근로자 1만명당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은 15%이상 큰 폭으로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산업현장 사고 발생 비율이 높은 편인가?
"나라마다 통계를 산출하는 기준이 달라, 산재통계를 국가별로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다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지표가 사고성 사망만인율이다. 사망만인율의 경우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일본, 독일 등에 비해 2~4배 정도 높다.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심각하다. 지난해 산재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20조가 넘었다.
20조라 하면 경차 125만대를 구입해 사회복지단체에 후원할 수 있고, 연봉 2000만원의 근로자 100만명을 1년간 고용할 수 있는 액수다. 더 큰 문제는 경제적 손실액이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올해가 공단 설립 30주년이다. 7월 첫째 주가 산업안전보건 강조주간이었는데 설립 이래로 처음 대통령이 영상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
"산업안전보건의 날 행사에 대통령이 영상메시지를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84년 17회 행사 때 국무총리가 참석한 것이 유일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기념식에 영상 메시지를 보내 "생명과 안전에 대한 책임을 외주화하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하겠다"며 "산업현장의 위험을 유발하는 원청과 발주자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게 하겠다"고 밝혔다.
산업재해 발생 위험이 큰 사업은 외부 용역을 주는 일을 금지하고, 산재 발생시 위험을 유발한 원청업자와 발주자의 책임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도 관련 법인 산업안전보건법(고용노동부), 건설산업기본법(국토교통부)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번 행사 때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이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을 도입한 안전장치 시연 전시회였다.
산업 안전 교육 중 위험한 기계를 직접 조작해 보고, 건설 현장에서 작업해 보는 게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기계를 실제로 다루거나 작업을 하지 못한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번 VR시연은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 관람객이 머리에 쓰는 영상장치(HMD·Head Mounted Display)를 하고 올라서면 눈앞에 건설현장이 구현된다.
관람객 대부분이 소리를 ‘꺅’ 지른다. 위험 물질이 낙하하고, 발을 헛디뎌 추락하기 때문이다. AR은 스마트폰으로 기계에 초점을 맞추면 관련 명칭과 설명, 위험률 등이 눈앞에 뜬다.
문제는 예산이다. VR을 구축하는데만 수십 억원이 넘어 중소기업은 언감생심이다. 결국 공단 주도로 교육할 수밖에 없어 기획재정부에 내년도 예산으로 신청했는데 반드시 처리되길 바란다."
▲10월에 이사장직을 그만둔다. 향후 계획은?
"일단 쉴 생각이다. 30년 넘게 안전보건에만 전념해 왔기 때문에 관련 자료,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해 책을 쓸 계획이다."
◆이영순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1946년생으로 공주사범대부속고등학교, 고려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화학교육 석사,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한국안전학회 회장, 한국가스공사 비상임이사, 서울과학기술대 공과대 학장,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정책자문위원 등을 거친 뒤 2014년 10월 16일부터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에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