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정 기자 =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화제다. 영화 자체에 눈길을 끌 만한 요소가 가득하지만 미국의 거대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가 배후에 있다는 점이 큰 이슈가 됐다. 온라인 동영상이라는 시대적 트렌드와 커지는 수요를 바탕으로 영화관 체인의 아성을 건드리면서 마찰음도 커졌다.
이런 넷플릭스가 발을 동동 구르며 넘보고 있는 시장이 있다. 손을 뻗어 보지만 정부 차원에서 세운 높은 장벽에 진입이 쉽지가 않다. 온라인 동영상 산업의 불모지도 아니다. 후발주자로서의 강점을 바탕으로 모바일 등 IT, 각종 첨단산업의 첨병이 된, 거대하고 강력하며 막대한 잠재력까지 가진 중국이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여전히 순탄치가 않다. 지난달 말 외신을 중심으로 넷플릭스가 아이치이와 함께 제공한 애니메이션 ‘보잭 홀스맨’의 일부 에피소드가 사라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중국 당국의 거침없는 칼질은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그야말로 ‘넘사벽(넘을 수 없는 벽)’ 시장이지만 또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곳이 중국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한반도 배치로 한류 제재가 시작되기 전 중국 대륙을 뜨겁게 달궜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태양의 후예 관련 기사에는 방송사와 시청률이 아닌, 아이치이와 누적 조회수가 계속 언급됐다. 당시 태양의 후예는 아이치이에 회당 25만 달러의 가격으로 판권을 판매했고 총 누적뷰 26억회 돌파라는 화려한 기록을 남기며 엄청난 돈을 벌었다.
◆ 동영상 스트리밍도 BAT 각축전, 대세는 모바일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도 중국 IT 업계의 트로이카인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바이두는 아이치이를 전면에 내세웠고, 알리바바는 유쿠투더우(优酷土豆)를 인수해 산하에 두고 있다. 텐센트는 자체 서비스인 텐센트동영상(騰訊視頻)으로 경쟁하고 있다.
이 외에 최근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 위기를 맞았지만 한때 중국판 넷플릭스로 불렸던 러에코의 러스동영상, 검색포털인 소후닷컴의 소후동영상, 망고TV, PPTV 등도 중국을 대표하는 동영상 사이트다.
최근 중국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은 PC 중심에서 모바일로 이동하고 있다. 외부 제작 동영상을 단순히 서비스하는 방식에서 자체제작 영화나 드라마, 종합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개인의 라이브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사업 영역도 확장하는 추세다.
중국 시장조사기관 아이리서치(艾瑞) 네티즌 모니터링 시스템인 iUserTracker와 mUserTracker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중국의 월단위 동영상 조회 모바일 단말기 수는 9억4500만대, 월단위 시청시간은 177억 시간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1월 대비 각각 20.08%, 27.18% 급증한 수준이다. 올 1월 기준으로는 9억5000만대로 10억대 고지를 향한 질주도 계속되고 있다.
아이치이와 텐센트동영상, 유쿠투더우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한 단말기가 각각 4억7400만대, 4억2500만대, 2억8000대로 나란히 1~3위를 차지하며 확실한 1군 진영을 형성했다. 모바일 단말기를 통한 월단위 동영상 시청시간도 아이치이 50억2000만 시간, 텐센트동영상 37억7000만시간, 유쿠투더우 30억2000만 시간으로 전체 시청시간에서 이들 3사의 비중이 70.25%에 육박했다. 4위인 러스동영상 시청시간은 11억7000만 시간으로 1군과의 격차가 컸다.
1월 기준 PC로 동영상을 시청한 네티즌은 총 5억3000만명으로 지난해 1월 대비 증가율이 0.3%에 그쳤다.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의 중심이 PC에서 모바일로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PC 동영상 시장에서도 3사의 우위는 확실했다. 아이치이, 유쿠투더우, 텐센트동영상의 액티브 유저는 각각 6277만, 5170만, 3095만명으로 역시 1~3위를 차지했다.
중국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의 왕좌를 차지한 아이치이의 최대 경쟁력은 사업 다원화와 자체제작 콘텐츠 확대로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는 데서 나온다. 아이치이는 2010년 설립된 동영상 스트리밍업체로, 당시 중국 동영상 업계에서 판권에 대한 의식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 강점이 됐다. 아이치이는 시작부터 콘텐츠의 독창성과 ‘질’을 중시했고 결국 회원제, 유료화, 자체 제작 콘텐츠 제공 등으로 큰 인기를 누리며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아이치이가 자체 제작해 매주 금·토요일 방송하고 있는 토크쇼 ‘치파숴(奇葩說 렛츠토크)'의 성공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젊은이들의 취미와 특징, 선호도, 이슈를 분석해 내용을 구성하고 시선을 끌 만한 영상 편집, 말 잘하기로 유명한 게스트 확보 등으로 젊은 네티즌을 확실히 사로잡은 아이치이의 대표작이다.
◆ 수익 모델은? 온라인 광고+유료 서비스
지난 2011년만 해도 63억 위안(약 1조641억원)에 불과했던 중국 온라인 동영상 시장은 지난해 10배 수준인 609억 위안(약 10조2866억원)으로 몸집을 불렸다. 빠르게 커지는 시장 속에서 중국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는 어떻게 돈을 벌고 있을까.
대표적인 수익원은 동영상에 삽입되는 광고다. 이미 동영상 업체가 매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동영상을 시청하는 고객이 늘고 있으며, 모바일 단말기도 보편화되는 추세라는 사실이 시장 잠재력을 계속 키우고 있다.
시장정보업체 애널리시스(Analysys)가 지난해 발표한 ‘2016년 4분기 중국 온라인 동영상 광고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중국 동영상 광고시장 규모는 99억6000만 위안으로 전분기 대비 2.2%, 전년 동기 대비로는 무려 38.8% 성장했다.
모바일 시장 확대에 따라 모바일 광고 비중도 커지는 추세다. 지난해 4분기 중국 모바일 동영상 광고 시장 규모는 62억1000만 위안으로 전체 동영상 광고 시장의 62.3%를 차지했다. 업체별 점유율은 아이치이 21.4%, 텐센트동영상 21.2%, 유쿠투더우 20.5% 순으로 3사의 점유율이 60%를 웃돌았다.
온라인 광고가 많은 돈을 벌어주는 동시에 최근에는 '유료화' 추세가 업계 전망을 장밋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지난해 인기 드라마를 모두 보려고 동영상사이트 3곳에 가입했어요. 저녁이면 스마트폰으로 최신 인기 드라마를 보는데 무료 동영상도 꽤 많아요. 하지만 한 주나 기다릴 수가 없어 유료로 콘텐츠를 구입해 시청하죠.”
베이징 우전(郵電)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 샤오린은 이처럼 거리낌없이 유료 콘텐츠를 구입해 즐기고 있다. 샤오린뿐만이 아니다. 콘텐츠가 다양화되고 수준이 높아지면서 중국 내에서 유료 동영상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중국 동영상업체가 유료화 서비스를 시도한 것은 2010년의 일이다. 당시 유료 콘텐츠는 할리우드 유명 영화와 일부 중국 영화에 국한됐다. 2013년 이전에는 동영상업체가 자체 판권을 보유한 콘텐츠는 극히 적었다. 2014년 이후 해적판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고 자금력이 생긴 일부 업체가 자체 판권, 콘텐츠 확보에 주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2015년 중국 동영상 업체들은 본격적으로 회원제를 도입하고 유료화 서비스 확대에 속도를 올렸다.
시장은 급속도로 커졌다. 인민일보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온라인 동영상 콘텐츠 유료 이용자는 7500만명을 넘어 북미와 유럽 다음의 세계 3대 시장으로 부상했다.
아이리서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 동영상 시장에서 유료 결제 수익 비중이 19.3%에 달했다. 오는 2019년이면 유료서비스가 온라인 광고 다음의 주요 수익원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유료 시장의 경쟁력은 콘텐츠다. 이를 인식한 동영상 업체들은 온라인 드라마, 종합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 애니메이션 등을 제작 혹은 확보해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에서 유료로 판매된 콘텐츠는 총 239편으로 전년 동기 대비 564%나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중 드라마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무료 동영상은 짧고 재미가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구성하고, 유료 콘텐츠는 재미와 유익성과 퀄리티를 갖춘 내용을 갖춰 고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중국 유료 동영상 시장의 주요 고객은 20대(20~29세)로 전체의 44.2%를 차지했다.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있고 콘텐츠 수요가 강한 30대가 23.4%로 그 뒤를 따랐다. 19세 이하도 23.1%로 비중이 높았다. 새로운 미디어에 익숙하지 않은 40세 이상의 중장년, 노년층의 비중은 9.3%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