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호모 사피엔스다.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는 현생인류 종에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는 라틴어 학명을 붙였다. 린네가 고안한 분류법에 의하면 생물 학명은 라틴어로 속명과 종명을 쓰고 뒤에 학명을 명명한 사람 이름을 붙이게 돼 있다. 그래서 현생인류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 린네’지만 보통 린네는 생략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혜로운 사람’이란 뜻이다. 철학에서는 무엇보다 이성적 사유 능력에 주목한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저서 <사피엔스>에 다음과 같이 썼다.
“7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의 한 구석에서 자기 앞가림에만 신경을 쓰는 별 중요치 않은 동물이었다. 이후 몇 만년에 걸쳐 이 종은 지구 전체의 주인이자 생태계의 파괴자가 되었다.”
어떻게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을까.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정복한 성공 비결은 사고방식, 의사소통 방식에 기인한 인지혁명에 있다고 하라리는 설명한다. 또한 그는 인간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은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라 보았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이를 언어로 소통하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의 사유능력 때문에 가능하다. 인간은 호기심을 갖고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것이 과학의 출발점이다. 상상하고 이성적으로 사고하면서 인간은 물질세계와 생명체의 본질과 원리를 알아낼 수 있었고 과학적 발견을 통해 방대한 지식과 학문 체계를 축적할 수 있었다. 과학발전은 호모 사피엔스의 사유능력과 지혜 덕분이다. 이를테면 호모 사피엔스는 과학을 하는 인간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인류문명 발전의 원동력은 과학이지만 과학지식은 그냥 놔두면 기초 원리에 불과하다. 과학지식이라는 구슬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 과학지식을 활용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을 기술이라고 한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 발명하는 것은 인간의 또 다른 본성이다. 만드는 인간, 도구의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파베르(Homo Faber)는 특히 근대산업사회로 들어오면서 설득력을 갖는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근본적 차이점을 만드는 공작 본능에서 찾은 것이다.
이렇게 관점에 따라 지혜로운 인간, 만드는 인간, 놀이하는 인간으로 인간 본성을 다르게 정의해 왔지만 이 세 유형의 인간이 각각 서로 다른 인간은 아니다. 같은 인간의 다른 측면일 뿐이다. 인간은 생각하고, 만들고, 노는 세 가지 본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인류역사의 발전과정에서 과학과 지식을 만드는 데 기여한 것은 지혜로운 인간이었고, 산업혁명과 근대화를 이끌어온 것은 만드는 인간이었으며, 문화를 발전시켜온 것은 놀이하는 인간이었다. 사유는 지식의 원천이고, 도구와 공작은 창조의 원동력이며, 놀이는 인간 문화의 핵심이다. 어느 것 하나 인간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