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력이 쇠하고 입맛도 떨어지는 이맘때, 특별할 것 없는 조리법으로 세상에 둘도 없는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곳이라면 어디든 떠나고 싶어졌다.
지역에서 난 재료를 십분 활용해 훌륭한 별미를 만들어내는 전남 장흥으로 떠났다.
장흥군은 최근 이 지역에서 꼭 맛봐야 음식들을 장흥 9미(味)로 선정했다.
장흥 9미로 선정된 모든 음식이 그렇겠지만 이들 요리 중 상당수는 재료 자체의 맛을 만끽할 수 있다. 특히 장흥한우삼합과 갯장어 샤부샤부, 된장 물회는 후텁지근한 여름철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고 떨어진 기력을 보하기에 그만이다.
◆한우와 키조개 관자, 표고가 만나니 '환상'이로구나
홍어 대신 키조개 관자를, 돼지고기 수육 대신 등급 좋은 한우를, 묵은지 대신 장흥 특산물 표고버섯을 함께 싸 먹는 색다른 삼합이다. 이 요리는 장흥군민이 합심해 만들었다고.
잘 달군 불판에 빛깔 좋은 한우 한 점을 올리고 불판 가장자리에 담겨 나오는 육수에 탱글탱글한 키조개 관자와 표고버섯을 담가 살짝 익힌다.
보통 깻잎이나 상추에 싸먹기도 하지만 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기 위해 처음 한 입은 위 세 가지 재료만 맛보길 추천한다.
세 가지 재료에서 나오는 고유의 풍미가 한데 어우러지며 입맛을 돋운다. 한우를 씹을 때마다 나오는 육즙이 바다 내음이 진한 키조개 관자를 부드럽게 감싸 중화시키고 표고의 은은한 향이 입안에 가득 퍼지며 조화를 이룬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씹고 나니 어느새 꿀꺽이다.
◆갯장어 샤부샤부 한 점이면 원기충전 '끝'
여름철에 맛볼 수 있고 장어 중 최고가를 자랑한다는 갯장어는 요즘 ㎏당 5만원선에 육박한단다. 식당에서 하모샤부샤부 한 접시를 먹으려면 최소 8만~10만원은 내야 한다.
지역에서는 흔히 하모(はも)로 불린다. 아무것이나 잘 문다고 ‘물다’라는 뜻의 일본어 ‘하무’에서 유래된 갯장어는 주로 남해안 일대 갯벌에서 서식하는데, 단백질과 무기질, 비타민A가 풍부해 최고의 보양식 재료로 꼽힌다.
오동통 살이 오른 갯장어를 칼집을 낸 후 가시를 부드럽게 만들고 한입 크기로 잘라 대추와 인삼, 파 등을 넣은 육수, 전복과 버섯 등 부재료와 함께 상에 낸다.
육수가 끓기 시작할 때 손질한 갯장어를 살짝 데친 후 건져내 양파와 부추, 된장 등과 한 쌈 사서 베어 물면 담백하고 고소하기 그지없다. 너무 익히면 육질이 질겨진다. 살짝 데친 후 건져냈을 때가 가장 맛있다.
갯장어를 샤부샤부의 진한 육수를 한 숟가락 떠서 함께 맛보면 담백한 맛은 배가 된다.
샤부샤부를 맛본 후에는 죽이나 면으로 식사를 마무리하면 온종일 속이 든든하다.
◆된장 물회 후루룩 한 사발 들이키면 더위 싹~
초고추장을 풀어 먹는 물회와 달리 장흥의 물회는 된장을 기본으로 한다.
여기에 꽁꽁 언 얼음 동동 띄워 내니 국물 한 숟가락만 입에 떠 넣어도 더운 속을 달래는 데 제격이다.
며칠씩 고기잡이를 나간 어부들이 준비해간 김치가 시어 버리자 잡아 올린 생선과 된장을 섞어 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된장 물회는 이제 여름철 집 나간 입맛을 돌아오게 하는 별미가 됐다.
새콤한 맛보다는 된장의 구수함이 입안에 먼저 퍼지고 뒷맛이 깔끔해 남녀노소 즐겨 찾는다.
된장과 상큼한 열무김치가 한데 어우러져 식감은 아삭하면서도 쫄깃하고 그 맛은 고소하다.
물회를 다 먹은 후 남은 국물에 면이나 밥을 말아 먹어도 꿀맛이다.
최근에는 회 대신 한우를 넣은 한우 된장 물회도 판매한단다. 이 역시 여름철 입맛 제대로 사로잡는 이색 요리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