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디벨로퍼는 남성들의 리그였다. 부지 작업에서 파이낸싱, 각종 인허가와 시공 등 사업 단계마다 치열한 협상과 접대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토지주들과의 협상, 인허가 과정에서의 설득, 시공 과정에서의 크고 작은 불협 화음들을 조율하려면 에스트로겐보다는 테스토르테론이 적합하다고 여겨지던 세계다.
최근 이같은 마초 세계에 도전하는 여성 디벨로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들은 남성들도 힘들다는 시행업계에서 하나둘씩 성공신화를 써가며 단단한 '금녀의 벽'을 깨고 있다. 그들의 진출은 시행업계가 예전보다 투명해졌다는 방증이지만 그들로 인해 시행사업방식이 더욱 투명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측을 빗나간 답이 돌아왔다. 질문은 뻔했다. “여성 디벨로퍼로서 시행과정에서의 난관을 어떻게 극복했냐”고 물었었다.
섬세함이나 부드러움, 여성 특유의 감성과 배려 등의 답이 나올 것이란 고정관념은 이 한마디로 퍽하고 깨졌다.
김동신 다우케이아이디 대표(44).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 디벨로퍼다. 한국디벨로퍼협회에 등록된 시행사 중 여성 대표는 4명에 불과하다. 그들 대부분 최근 수년간 가입한 회원사들이다. 시행업계는 그만큼 남성들만의 리그였다.
그가 최근 완판에 성공한 오피스텔 수유 ‘아트리체’ 인허가 당시 얘기다. 건축심의가 용적율에 대한 지침사항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여 지연됐다. 다우 측 판단은 법이나 지침상 위배되는 게 없다는 것이었다. 구청장실 문을 두드렸다. 인허가권을 가진 구청과 디벨로퍼는 이 바닥에선 전형적 갑을관계다. 김 대표는 “문제되는 것이 없는 데 인허가가 늦어진다”며 재검토를 요청했다. 역효과를 우려하는 직원들의 목소리도 나왔다. 결과는 우려와는 반대였다.
김 대표 본인도 “잘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니다”고 했다. 그게 옳았던 것이고 그래서 정면승부했다는 것이다. 이런 성격 때문에 마디마디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지만 가지 전체로 보면 성공했다고 자평한다.
수유 아트리체 설계 과정에도 그의 성격이 반영됐다. 보통 역세권 오피스텔의 경우 주출입구를 이면도로 쪽에 낸다. 대로변 상가 면적이 커져야 수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김 대표의 고집에 대로변 출입구로 설계가 변경됐다. 2억~3억원 더 벌자고 기형적 건축물이 나오는 게 싫었다는 게 이유다. 사업가가 주판알을 튕기면서 수억원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오피스텔은 완판됐다. 오피스텔 모델하우스 유닛의 가구와 소품을 직접 챙기는 섬세함도 갖췄다. 영어(Art)와 불어(Riche)가 결합된 오피스텔 브랜드 '아트리체(Artriche)'는 그가 직접 이름을 지었고, 로고 디자인도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오피스텔 완판 후 일간지에 '고객의 성원에 감사드린다'는 내용의 광고를 냈다. 분양은 사전 광고가 보통이다. 굳이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마케팅 비용이다. 그는 "이 프로젝트로 사업을 끝낼 것도 아닌데 고객들에게 회사 이름이라도 알리는 효과는 있지 않겠냐"라고 했다.
의리도 그의 무기다. 수유 아트리체 건설 부지에 식당이 하나 있었는데 인근에 갈 일이 있으면 꼭 그 식당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는 “기왕이면 인연이 있는 곳에서 팔아주는 게 좋지 않으냐”고 했다. 인터뷰 후에 들른 역삼동 다우KID 인근 식당에서도 10여명의 종업원이 지나칠 때마다 모두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다양한 대외활동이 밑거름이 될 것 같다. 그는 2004년 외교부 인가를 받은 한중문예진흥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중 간 학술회의와 유학생 교류, 탈북자 지원 업무 등을 펼치는 곳이다. 지난해 3월엔 제1회 청년창업교류대회를 개최했다. 300개의 사업계획서가 제출됐고 그중 7개의 아이템을 발굴해 지원하고 있다. 한·중 간 문예 교류 과정에서 연변 등 지역 당간부들과 교류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부동산 개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라고 한다.
‘부동산 개발업으로 중국에 진출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인적 레버리지를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합작법인 형태로 사업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정부가 부동산 개발 사업을 벌일 수 있게 코디네이터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의 중국 진출계획서의 마지막 페이지는 통일 후 북한의 부동산 개발사업에 진출하는 것이다. 그는 “통일은 부동산 디벨로퍼 업계에 큰 기회가 될 것”이라며 “중국 당 간부들과의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게 그때가 되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산림조합중앙회 56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이사이기도 하다. ‘디벨로퍼와 산림 간의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고 하자 “디벨로퍼는 공간을 개발하는 사업이며 국토의 65%가 산으로 이뤄진 우리나라에서 공간을 개발하는 것과 산림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고 했다. 민주평통 자문위원, 월드코리안장학회 한인청년장학단장도 그가 대외역할을 하며 맡고 있는 직함이다.
그의 대학 전공은 회계학이었다. 전공을 살려 삼성 관계사의 재무담당 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그가 부동산 시장에 눈을 뜨게 된 건 지인의 임대사업을 도와주면서부터다. 싱가포르에서 임대사업으로 큰돈을 번 지인이 한국에서 임대사업을 시작하며 그에게 총괄관리를 맡겼다. 외환위기(IMF) 이후의 무렵이다. 방식이 독특했다. 매입 후 임대를 놓는 게 일반적인데 전세로 임차해 월세로 임대수익을 거두는 방식이었다. 전국에서 이렇게 1000여 가구 정도를 관리했다. 당시로선 대규모 사업이었다.
그는 “내가 사장이 아니어도 사장처럼 일했다”며 “그런 점이 일을 맡긴 사람에게 믿음을 주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디벨로퍼로서 성공의 발판을 다진 것은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의 선친은 동대문 평화시장을 개발한 선배 디벨로퍼였다. 김 대표는 "디벨로퍼는 직원들과 금융사 시공사 분양대행사 건축사 감리사감독관 등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한 구성원과의 파트너십과 신뢰를 형성시는 것이 본질이며 가장 큰 성공 요인"이라고 말했다.
다우KID는 2008년 문을 열었다. 처음엔 다세대임대주택 시행과 분양마케팅으로 자본을 모았다. 3년 뒤 매입한 성수동 준공업부지에 지은 지식산업센터(옛 아파트형 공장) 분양이 성황리에 끝나면서 디벨로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회사 이름의 케이아이디(KID)가 지식산업개발(Knowledge Industry Development)의 약자다.
그는 최근 선배 디벨로퍼였던 선친의 묘를 수도권 인근 공원묘지로 이장했다. 아버지의 묘비엔 '디벨로퍼란 이름으로 살다가신 아버지 존경합니다'라고 써있다. 그는 다우가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성공할 때마다 건축물의 미니어처를 꽃대신 아버지의 무덤가에 장식할 계획이다.
그의 끼는 시행사업 뿐 아니라 다양한 문예활동으로도 발현된다.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당선작의 제목은 '뼈대'다. '유서 깊은 가문과 건축물의 골조가 오버랩된다'고 했더니 휴대폰에 담긴 시 전문을 보여줬다.
우리는 이런 집안이다/ 뼛속까지 그렇다 /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세가 기울고/ 나이가 들면서 바람이 든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집안이다 /뼛속까지 그렇다/ 바람이 불어도 어떠한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건물처럼/ 엄마의 기침소리와 할머니의 신음 속에도/ 뚫리지 않는 굳은 심지가 있는/ 그런 뼈대 있는 집안이다/ 나는 오늘도 현장 골조를 보며/ 할머니의 그처럼 단단한 뼈대를 떠올린다.
그에게 '왜 험하다는 디벨로퍼를 계속하냐'고 했다. 그는 "재미있지 않냐"고 반문하며 "기획하고 추진하고 완성하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다. 프로젝트가 생기면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고 했다. 뼈대까지 천상 디벨로퍼다.
◆이력=△한양대 경영학 석사 △시인 문예 등단 △(現)한국정책개발원 이사 △(現)통일문화여성포럼 대표 △(現)한중문예진흥원장 겸 이사장△(現)민주평통 자문위원 △(現)재중한인회 자문위원 △(現)산림조합중앙회 이사 △(現)한국롤러스포츠연맹 부회장 △(現)한국부동산개발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