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개봉한 영화 ‘하루’(감독 조선호) 역시 마찬가지다. 매일 눈을 뜨면 딸이 사고를 당하기 2시간 전으로 돌아가는 남자 준영(김명민 분)과 시간 속에 갇힌 또 다른 남자 민철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속에서 변요한은 아내를 구하지 못한 남자 민철 역을 맡은 것이다.
‘하루’는 등장인물이 동일한 기간을 반복하는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 작품. 극 중 민철은 영문도 모른 채 아내가 죽게 된 시간 속에 갇혀 허덕인다. 이는 전작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속 수현이 자의적으로 과거 여행을 결정한 ‘타임 슬립’과 구분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변요한 역시 ‘타임 슬립’과 ‘타임루프’의 미묘한 구분 지점에 주목했다. “능력을 가지고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타임 슬립과 수동적이고 반복적인 타임루프”에 관해 공부하게 됐고 장치의 수렁에 빠졌다.
“어렵게 생각하니 헤어 나올 수 없겠더라고요. 타임 슬립과 타임 루프를 장르적, 드라마적 장치로 받아들였어요. 그 과정을 거친 뒤 결국 가장 진하게 남는 건 민철과 미경의 관계더라고요.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도 드라마였어요.”
화려한 장식과 장치를 거둬내니 결국 인물과 드라마가 남았다는 변요한은 시선을 옮겨 민철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인서트에 등장하는 사진 속, 말간 민철과 구분을 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였다.
“사설 구급차 운전기사 일이 익숙해진 느낌을 주고자 했어요. 얼굴도 태우고 머리도 짧게 잘랐죠. 잠깐잠깐 등장하는 이미지들에서 민철과 미경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도록 힌트를 주고자 했어요. 그가 애지중지 끼고 있는 반지 같은 것들이요. 산재한 조각들을 모으다 보면 결국 미경과 민철의 관계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민철이 왜 그런 극단적 감정까지 이끌어갈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던 거죠.”
극 중 민철은 준영과 같은 아픔을 겪게 되는 인물이지만 그와는 대조되는 성격과 행보를 보인다. 준영이 “지적으로 딸의 죽음과 관련된 의문을 풀어간다”면, 민철은 무작정 부딪치고 사건을 풀기 위해 몸을 내던지는 성격인 것이다.
“감독님께서 상반된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하신 것 같아요. 상황을 극단적으로 끌고 가면서 속도감을 줘야 하는데 비슷한 성격을 가진 인물들이라면 재미가 덜했겠죠? 이런 인물들의 성격을 명확하게 구분 짓고, 하나씩 다 잡아주신 것 같아요.”
변요한은 민철의 캐릭터를 연구하며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순간”을 연구했다. 드라마적, 캐릭터적으로 변요한의 마음을 움직인 부분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저는 (영화를 준비할 때)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 영화보다, 다큐멘터리를 더 많이 봤어요. 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크고 작은 감정에 더 눈이 가더라고요. 누군가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과정 같은 게 (캐릭터 적으로) 도움이 더 많이 됐어요.”
공교롭게도 변요한은 “후회하고 상황을 돌이키려고 애쓰는 캐릭터”들을 연기해왔다. 일맥상통하는 캐릭터의 성격들을 짚으며 이러한 인물들에게 마음이 가는 이유를 질문했다.
“모두 다 선택과 후회 속에서 살지 않나요? 삶이 그렇다 보니 선택과 후회를 반복하는 캐릭터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계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도달할 수 있는 연기에 관해서도 고민하고 있고요. 요즘 휴식 기간이라서 영화를 많이 보는데 결국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표현의 차이인 것 같은데 결국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일맥상통하더라고요. 후회와 슬픔은 어디에나 있고 그걸 분출하느냐 참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이런 작품을 하면서 경험하고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 같아요.”
변요한이 ‘하루’ 출연을 결정짓기까지는 준영을 연기한 김명민의 공도 컸다. 그는 민철 역에 변요한을 강력 추천했고, 변요한에게 시나리오를 건네기도 했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촬영 막바지였는데, 선배님께서 ‘제작사에서 널 생각하는데 나도 너와 함께 찍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출연을 결정한 건 아니었어요. 독립영화를 고를 때처럼 신중하게 살폈죠. 감독님도 뵙고 하면서 느낌을 교류하고 합의점을 맞춰갔었어요.”
앞서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도 김윤석의 추천으로 시나리오를 받은 바 있는 변요한. 그에게 “형들에게 특별히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농담처럼 물었더니, 그는 “오히려 저는 애교도 없고 살갑지도 않다”며 멋쩍은 표정을 짓는다.
“그냥 열심히 준비하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하는 게, (선배들이) 좋게 봐주신 이유 같아요. (유)재명 선배님의 경우에는 이번 작품에서 처음 만난 거거든요. 그런데 다짜고짜 멱살을 잡고 칼을 휘두르는 신을 찍게 됐죠. 하하하. 어렵기도 했지만 제가 고민하고 노력한 걸 보여드리고 싶었고 치열하게 주고받고 싶었어요. 선배님들로 하여금 ‘진짜 뜨겁구나’라는 인상을 드리고 싶어요.”
표현에 인색하다는 변요한은 최근 “후회하고 상황을 돌리기 위해 발버둥 치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심적으로도 변화를 겪었다고 고백했다.
“조금 더 솔직해지고 싶어요. 아무 계산 없이 가고 싶어요. 술을 먹고 용기를 내서 속마음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를 걸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금까지 전 그렇게 살지 못했으니까요. 아무 감정 없이, 무의미하게 전화 거는 사람이 될 거예요.”
2011년 단편 ‘토요근무’를 통해 영화계에 데뷔한 변요한이 대중에게 알려진 건 3년여 정도. 그는 “계속해서 연기하고 싶다”는 단순하고 강력한 진심을 드러내며, 꾸준히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나가는 중이다.
“연기라는 게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갖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게 몇 개나 있겠어요? 저는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티다가 희소성이 떨어지고 대중들이 저를 찾지 않으면 (연기를) 그만하려고요. 다만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하고 싶어요. 천천히 순항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계속해서 도전하고 연기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