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하루' 김명민 "타임루프의 늪…고통이 카타르시스가 되기까지"

2017-06-19 11:33
  • 글자크기 설정

영화 '하루'에서 준영 역을 맡은 배우 김명민[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반복되는 딸의 죽음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아버지. 헤어 나올 수 없는 지옥의 굴레에 배우 김명민(45)이 빠졌다.

지난 15일 개봉한 영화 ‘하루’(감독 조선호)는 매일 눈을 뜨면 딸이 사고를 당하기 2시간 전으로 돌아가는 남자 준영과 시간 속에 갇힌 또 다른 남자 민철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등장인물이 동일한 기간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이번 작품에서 김명민은 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 준영 역을 맡았다. 준영은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의사로 세계 각지를 돌며 봉사활동을 행하고 있다. 온화한 성품으로 명망이 높지만 정작 집에서는 빵점짜리 아버지. 딸아이의 생일도 놓쳐버리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준영은 눈앞에서 딸을 잃게 된다. 더욱 끔찍한 것은 딸의 죽음을 반복해 목격, 시간 속에 갇혀버리고 만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이거 괜히 하겠다고 했나?’ 싶더라고요. 반복되는 감정을 어떻게 하면 식상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자칫하면 지루하게 보일 텐데. 조금의 오차라도 있으면 엉망으로 보일 것 같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변)요한이도 제가 데리고 온 데다가 리딩도 했고, 고사도 치렀고 테스트까지 마쳤는데! 하하하. 괜한 모험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람이 어떻게 안전한 길로만 가겠어요? 그 느낌을 전달하겠다는 마음으로 출연하게 된 거죠.”

영화 '하루'에서 준영 역을 맡은 배우 김명민[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연기 경력 21년 차인 베테랑 배우에게도 고민거리였다. 흥미로운 소재 및 줄거리였지만 표현에 있어서 걸리는 게 한둘이 아녔다. “시나리오는 재밌지만, 영화로 옮겨졌을 때도 재밌을까?” 걱정은 곧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늘 맡은 바 임무를 해내는 그답게, 김명민은 차근차근 하나씩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1년 만에 다시 보게 된 건데, 괜찮게 잘 나온 것 같아요. 타임루프라는 게 잘 만들어봐야 본전이거든요. 외국 영화의 경우 거대 자본으로 만들어지고 충분한 볼거리를 만들지만 우리나라는 그러지 않잖아요? 드라마의 내러티브를 최대한 살리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식상한 면이 있겠죠.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다른 배우, 감독이 만났으니 영화도 다를 것이라는 거예요.”

“석연치 않은 기분으로 극장을 나오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작품의 외적인 면모들을 꼼꼼히 살폈다. 접합되는 부분이 어긋나지는 않았는지, 오류는 없는지 철저하게 살피려고 했다. 타임루프 소재에 대한 이해력과 철학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저는 타임루프 소재는 앞뒤가 딱 맞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 시나리오를 높게 평가한 것도 바로 그 점이에요. 앞뒤가 딱딱 맞거든요. 중간에 확 설명을 풀어버리는 경향이 있지만, 지금까지 나온 한국영화 중 이만한 외형은 없다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가 얼마나 타임루프 소재에 대한 부담감에 시달렸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에 “마음의 준비를 할 겸 참고한 작품이 있었는지” 질문했다.

“아뇨. 일부러 보지 않았어요. ‘답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특화된 타임루프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루’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진 않았지만 뭔가 다르다는 평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남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고자 했어요.”

영화 '하루'에서 준영 역을 맡은 배우 김명민[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앞서 언급한 대로 김명민은 민철 역을 두고 번뜩 변요한을 떠올렸다. “열정과 패기가 넘치되 연기를 잘하는 아이”를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그가 떠올랐다.

“저는 요한이랑 연기를 하고 싶었어요. 안 그래도 민철 역을 두고 요한이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작사에서도 ‘변요한 어떠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무조건 요한이!’라고 했죠. 당시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를 할 때였는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주고받게 됐어요. 타임루프를 다룰 땐 연기 구멍이 있으면 안 되거든요. 식상한 소재와 반복되는 하루, 똑같은 상황을 뭘로 막을 것인가. 바로 연기라는 거예요. 미묘한 감정을 이들이 잘 표현해줘야 하거든요. 특히 민철 역은 감정 조절을 잘해야 했거든요. 요한이는 또래 배우 중 자세나 연기력이 최고인 것 같아요.”

영화를 찍는 내내 “정말 타임루프에 빠진 게 아닌가”하는 착각도 들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처럼 연기”하다 보니 체력적, 감정적 소모가 엄청났다.

“너무 힘들더라고요. 박문여고 사거리 신은 정말 고통 그 자체였어요. 도로에서 찍는 터라 그늘도 하나 없고 한낮에는 20도씩 막 올라가는 거예요. 그곳에서 3주를 보냈는데 ‘정말 타임루프에 빠진 게 아닐까? 뭐가 영화고 뭐가 현실이지?’하는 생각을 했어요. 하루가 똑같이 돌더라고요. 하하하. 옷도 똑같지, 배우들도 똑같지…. 거기다 만날 똑같은 장면을 찍으니까. 그게 고통스럽더라고요.”

거기다 준영은 매번 딸의 죽음을 목격해야 하는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인물. 격한 감정을 내내 유지하는 것도 배우들에겐 고통이었을 터였다.

“중반부터는 내리 달리는 감정이었죠. 보는 분들도 아마 지치실 거예요. 세 배우 모두 감정이 고조돼 있으니까요. 연기하면서도 힘들었지만…. 하하하. 한번 달리면 멈출 수 없는 영화니까요.”

영화 '하루'에서 준영 역을 맡은 배우 김명민[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차근차근 쌓아 올린 시간이 어느덧 20년. 믿고 보는 배우라 일컬어지는 김명민이지만 그는 늘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저는 지금까지 돈과 타협하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쥐뿔 없을 때부터요.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현실에 안주하게 될까 봐 걱정돼요. 그래서 박수칠 때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거고요. 예전에 한 음악프로그램을 보는데 제가 좋아하던 가수가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노래하더라고요. 그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나도 그럴 수 있을까?’ 걱정되더라고요. 항상 좋은 모습으로 남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 있잖아요.”

걱정은 걱정일 뿐. 김명민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작품에 임할 생각”이다. 현재 영화 ‘물괴’를 찍고 있는 김명민은 곧 영화 ‘브이아이피(VIP)’ 개봉과 ‘조선명탐정3’ 촬영을 앞둔 상황이다.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조선 명탐정3’ 촬영은 기대가 커요. 놀러 간다는 기분이 들거든요. 같은 스태프, 배우들을 만나 신나게 놀고 오는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은 적당히 격조 있고, 적당히 오두방정을 떠는 작품이 될 거예요. 책도 잘 나와서 기대가 되네요.”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