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싱크탱크가 한국 정부와 국회가 추진 중인 ‘디지털 플랫폼 규제법안’을 친중(親中) 정책이라고 비판해 트럼프 정부 출범과 함께 마찰이 예상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뿐 아니라 야당도 내년 상반기 네이버, 카카오 등 거대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을 막기 위한 규제를 마련한다는 목표로 관련 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미국과 무역 마찰이 예상되는 가운데 해당 규제법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글로벌 기업에 대한 역외 적용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2일 IT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 ‘한국이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 법에 저항해야 하는 이유’에서 “한국이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을 모델로 제안한 개혁안은 미국과 한국의 대형 기업을 겨냥하며, 혁신을 저해하고 소규모 경쟁사는 제외하는 반면 중국 기업이 그 공백을 메우도록 초대한다”고 분석했다.
ITIF는 특히 “미국 선거가 끝난 이후 한국은 주요 미국 기업에 불리한 정책을 용납하지 않을 새로운 행정부의 반발에 직면할 위험이 있다”며, “DMA와 같은 개혁은 중국 기업에 더 강력한 발판을 제공함으로써 경제적·안보적 위험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ITIF는 미국 워싱턴DC에 본부를 둔 비영리 공공정책 연구기관이며 대표적인 싱크탱크로 평가된다.
ITIF가 이 같은 보고서를 발표한 배경에는 지난 10월 공정거래위원회와 여당이 발의한 ‘플랫폼 공정 경쟁 촉진법’과 22대 국회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이 있다. 이들 법안의 주요 대상이 네이버, 카카오 등 거대 플랫폼 기업을 겨낭하면서 '네카오 규제법'으로도 불린다.
두 법안은 시장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를 사후 또는 사전에 지정해 자사 우대, 끼워 팔기, 멀티호밍 제한(입점 업체의 타사 플랫폼 이용 제한) 등 불공정 행위를 제재하도록 규정한다. 불법·편법 행위 적발 시 최대 매출액의 8%를 과징금으로 부과해 거대 플랫폼의 제재를 신속히 추진함으로써 소비자와 소상공인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해당 법안이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 국내 기업뿐 아니라 구글, 애플 등 국내에서 활동하는 미국 기업에도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내년 1월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 기업에 대한 법 적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디지털 규제와 관련해 규제 완화 및 자국 산업 보호를 우선시하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피력해왔기 때문이다. 미국 싱크탱크가 해당 법안을 미국에 반하는 친중 정책으로 규정한 만큼 법 제정과 동시에 미국과 무역 마찰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따라서 향후 제정될 디지털 플랫폼 규제법이 역외 적용을 제외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미국 기업에는 규제 적용을 유예하고, 한국 기업에만 해당 법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정부가 카카오 등 국내 기업에 대한 규제법 제정 의지가 높은 것도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실제 정부와 여당이 발의한 플랫폼 공정 경쟁 촉진법은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통령이 카카오T의 수수료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한 이후 급격히 추진된 것으로 파악된다.
한 포털기업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 초창기부터 카카오와 쿠팡 등 특정 기업에 대한 규제 의지가 강한 만큼 한국 기업만을 대상으로 한 규제법 제정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에 따라 국내 기업 경쟁력이 크게 저하되고 미국 기업에 플랫폼 시장을 내주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