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후 중국 현대미술 속 중국인의 ‘애매한 웃음’에는 급변하는 사회에 대한 불안과 부적응의 외침이 담겨 있다.
2000년대 초·중반 급변하는 중국 사회에 대한 불안과 혼란을 저항의 코드로 담아냈던 미술가들은 이미 문화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당시 그들이 그렸던 불안과 혼란을 호소하던 중국인은 이미 안정을 찾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10여년 전 동일한 인물형상에 대해 새로운 해석과 독해를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 작품 속 그들은 지금 이렇게 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혼돈을 즐기고 안정 속에서도 불안을 느끼라.”
부산 센텀시티 신세계 갤러리에서 열린 ‘중국현대미술특별전: Many Faces from China’이다.
한·중 문화교류가 거의 중단된 상황에서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할 만한 작품 전시회가 열린다고 하니 반가움과 우려가 뒤섞였다.
한국 경제의 손실과 문화교류의 제한을 불러온 한한령 조치에도 불구하고 문화교류의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반가웠고, 반중(反中) 정서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현대미술특별전’에 대해 과연 한국 대중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일단 참여 작가와 작품의 면면은 훌륭했다. 구성은 우려를 불식시키고도 남을 정도였다. 중국 현대미술의 ‘4대 천왕’으로 손꼽히는 장샤오강(張曉剛), 쩡판즈(曾梵志), 웨민쥔(嶽敏君), 왕광이(王廣義)를 포함해 루어 브라더스, 펑정지에(俸正傑), 리우예(劉野)등 내로라하는 작가 10인의 작품들이 33편이나 출동했다. 매우 드문 일이었다. 물론 때가 때인 만큼 이에 대한 보도와 평가는 매우 신중한 모습이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부터 문화대혁명 종식까지 중국현대미술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개혁·개방 이후에는 중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해석을 담은 정치적 팝아트(Political Pop)와 1989년 톈안먼(天安門)사건 이후 중국 정치에 대한 냉소와 조롱을 해학과 풍자로 녹여낸 냉소적 리얼리즘(Cynical Realism)이 중심이 됐다.
그리고 이 두 흐름이 중국 내 또 하나의 유행과 풍조를 만들어 내면서 염속미술(Kitsch Art)을 만들었다.
이번 특별전에 참여한 작가들은 바로 정치적 팝아트, 냉소적 리얼리즘, 염속미술의 대표 주자들이다. 이들 작품은 20세기 정치적, 사회적 풍파 속에서 개인적인 경험과 상처 입은 역사를 개성 있게 표현해 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의 손끝에서 중국 현대미술의 정체성이 확립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존재감이 인정돼 현대미술의 변방이었던 중국은 세계 미술시장의 중심으로 도약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각국 컬렉터와 큐레이터, 에이전시의 경제적 이익에 따른 적극적 관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일부 작가들은 ‘중국적 스타일’을 되풀이하면서 작품이 아닌 상품을 생산해 낸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로 인해 중국적인 것이 지나치게 소비되고, 결국 소진돼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국미술에 대한 관심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속됐고, 더 나아가 현대미술뿐만 아니라 고대 미술 분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중국 미술의 국제적 위상과 세계 시장 점유율은 가히 놀랄만한 수준으로 늘어났다.
전시회의 부제인 ‘Many Faces from China’처럼 작가들이 표현한 다양한 인물상에는 급변하는 시대상황 속에서 개인이 느꼈을 문화적인 충격과 심리적인 불안감, 이상과 현실의 간극으로 인한 소외감 등 다양한 인간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일부 단절된 중국과의 교류가 진행되는 등 정황상 한·중 간 경색국면은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관계 개선만으로 모든 것들이 이전과 같아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중국은 철저하게 실리를 추구하는 나라다. 중국이 자국 문화 세계화를 위해 전략적으로 한류를 이용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류가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게 되는 날, 불씨조차 남아 있지 않고 사그라질 수 있다.
반대로 중국 현대미술의 파워가 영원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래야만 중국 현대미술이 ‘특별전’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열릴 수 있지 않을까.
양국 모두 일시적으로 소비되는 콘텐츠가 아닌 지속가능한 콘텐츠가 필요한 때다.
강력한 문화 역량은 정치·경제적 규제까지도 초월한다. 한한령은 치명적이긴 하지만, 한국문화의 역량을 제고하는데 있어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안영은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ACCI) 선임연구원(베이징대학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