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전 수석이 지난 11일 오후 5시30분쯤 영장실실심사를 마치고 서울중앙지법을 나서며 얼굴에 띤 옅은 미소는 결과적으로 보면 마치 영장기각을 예감했던 것 같다. 당일 그가 판사 앞에 섰던 7시간가량의 시간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기자는 언론계를 떠나는 순간 온실에서 동토에 옮겨진 화초가 되지만 법조계는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이는 지난해 11월 우 전 민정수석이 검찰에 첫 소환돼 조사를 받을 당시 황제수사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한 장의 사진에서도 명백해진다.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면 재벌총수도 수치심과 두려움에 떤다는 검찰조사에서 우 전 수석은 팔짱을 끼고 역시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 한 장의 사진에서 당시 우리는 대한민국 검찰의 민낯을 역력히 봤다.
지난 11일 우 전 수석에 대해 진행된 7시간 가량의 영장실질심사에서 권순호 판사는 직권남용 등 8가지 혐의를 놓고 구속 여부를 면밀히 따졌을 것이다. 이 자리에서 검찰과 우 전 수석의 변호인 측은 치열한 공방을 벌였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치열했을지언정 날선 공방은 되지 못했던 것 같다.
권순호 당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우 전 수석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그 사유로 “혐의 내용에 관해 범죄성립을 다툴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8가지나 되는 혐의 중 단 한가지도 명백한 구속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판사는 검찰의 수사 결과로 구속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니 결국 검찰 수사가 부실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 식 수사를 했다는 것이다. 실제 우 전 수석은 여러 가지 혐의와 관련해 김수남 검찰총장을 포함, 검찰수뇌부들과 수시로 전화통화를 했었다. 하지만 검찰은 우 전 수석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이들을 불러 조사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심지어 조사 필요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통화한 게 무슨 죄가 되느냐”고 반문까지 했다고 한다. 통화 내용이 죄가 되는 지를 캐기 위한 조사 과정에서 통화 자체로는 죄가 되지 않는다며 조사를 생략하는 게 우리 검찰의 우 전 수석에 대한 전관예우 방식인 셈이다.
두 번의 영장 기각으로 검찰이 우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실제 검찰은 우 전 수석을 17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기소하며 함께 불구속 기소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월 첫 영장 기각 후 우 전 수석에 대해 사실상 유효한 추가 조사기 이뤄지지 못했다는 게 명명백백해진 이상 우 전 수석에 대한 기소가 유죄판결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게 법조계 안팎의 견해다. 최종 결심공판일에 법원을 걸어나오는 우 전 수석의 얼굴에 다시 한번 옅은 미소가 번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가라앉은 세월호가 다시 수면위로 나오기까지 3년간 우리 정부의 안전 시스템에 큰 개선이 없었 듯, 이번 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터져나온 검찰 적폐청산 구호가 ‘우꾸라지’의 미소와 함께 공염불이 된다면 최순실에게 상처받은 우리 국민의 자존감은 다시 한번 무너질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