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의원실 관계자에 따르면 대한변협으로부터 이날 오전 각 의원실에 ‘변호사 보좌관 및 비서관 채용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이 도착했다.
이어 “협회는 국회의원 보좌관 및 비서관을 희망하는 회원을 모집해 인력풀을 구성하고 있으니, 준비된 인재를 원하시는 국회의원께서는 협회 사무국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기록했다.
문제는 변협이 특정 직급 이상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변협이 채용을 요청한 비서관은 5급, 보좌관은 4급 상당의 별정직 공무원이다.
한 의원실 보좌관은 “입법 전문가로서 변호사를 보좌인력으로 채용해 달라는 건 충분히 검토해 볼 수 있다”면서 “그러나 지금처럼 4, 5급으로 직급을 특정해 뽑아달라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각 의원실에서 7급 이하 직급으로 근무 중인 변호사들도 상당수”라며 “채용을 요청하는 쪽에서 5급 이상을 요구한 것 자체가 특권의식이 남아 있다는 증거 아니겠냐”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실 보좌관은 “국회의 입법 업무는 단순하게 법리 적용이 아닌 정무적인 능력도 필요하다”며 “그저 변호사라고 해서 5급 이상의 직급을 바로 줄 만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법률전문가라는 자격보다는 오히려 동종 업계 경력과 개인 능력 차이가 중시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한 사시 출신 변호사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법조 시장이 예전 같지 않아 주변에서 경력직 6급 공무원으로 가는 경우는 많이 봤다”며 “변호사를 5급 공무원으로 채용해주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말했다.
변협의 채용 요청 공문은 전문직 업계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이기도 했다. 변협이 공문에서 언급한 ‘청년변호사를 위한 일자리 창출 기여’가 대표적으로 변호사 시장의 취업난을 보여주는 셈이다. 매년 2000여명에 달하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공급과잉으로 변호사들이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국가의 예산·결산 업무를 주로 다루는 국회의원의 업무의 특성상 회계전문 인력에 대한 수요가 많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의원실에 채용 요청 공문을 보낸 사례는 없었다.
회계사협회 관계자는 “IMF 직후 2000년대 초반 취업난으로 인해 기업 쪽에 채용협조 공문을 보낸 적은 있지만 국회를 상대로 채용을 요청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세무사협회 역시 국회의원실에 채용 관련 공문을 보낸 적은 없다고 했다.
변리사협회 관계자도 “변리사 업계는 취업난이 심하지 않아 국회에 채용협조 공문을 보낸 적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