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지운 삼성, 계열사 무너져도 지원안할 만큼 ‘자율경영’ 한다

2017-03-02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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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그룹’을 지운 삼성이 어떤 일이 있더라도 미래전략실과 같은 컨트롤 타워의 부활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철저한 계열사별 자율경영 체제로 가겠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삼성의 고위 관계자는 “(계열사 자율경영은) 경영위기에 처한 계열사가 부도가 나더라도, 다른 계열사가 지원하는 일은 없을 정도의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면서 “소나기를 피하려는 임시방편이 아니라 오랫동안 검토를 해왔던 일을 지금 추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일부터 삼성은 ‘그룹’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삼성그룹 이름으로 관리되던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은 모두 폐지되며. 그룹 차원의 사회공헌활동도 사라진다.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1993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도입한 파란색 타원형(오벌) 마크의 로고 대신 ‘SAMSUNG’ 문자 로고로 교체했다. 타원형 로고를 사용하고 있는 계열사들도 지난달 28일 그룹 해체 발표 이후 로고 교체를 고민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그룹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이 관계자는 “다른 대기업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삼성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그룹’이라는 단어를 ‘재벌’, ‘총수’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여기고 있다”면서 “모든 계열사를 삼성전자와 동일선상에서 평가하면서 오해와 편견을 받게 되었다. (그룹을 지운 것은) 이러한 불미스러운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라고 덧붙였다.

◆삼성 “굳건한 전문경영인 체제, 흔들림 없을 것”
그룹 사장단 회의도 폐지한다고 밝힌 것도 이의 연장선상이다. 60여개 삼성 계열사는 각각 이사회를 중심으로 독자경영에 나서게 된다. 인사·채용·투자 등 모든 것을 스스로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당분간 경영일선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 사장단회의까지 모두 없앤 삼성은 이제 계열사별 ‘각자도생’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러한 결정은 삼성 창립 때부터 정착되어온 ‘전문경영인 체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실제로 삼성은 오너 기업이라고 해도 계열사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맡아왔다. 중심축이 사라져 당장은 혼란은 있겠지만,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해석은 그래서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룹 산하라고 하더라도 계열사간 유대 관계가 그리 강하지 않았고, 계열사가 어떤 사업을 하는지 여부도 모르는 게 다반사다. 삼성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기업들이 그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기업인들에게는 상식적인 이야기”라면서 삼성의 결정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만, 삼성이 워낙 큰 기업들로 구성되다 보니 부문별 계열사간 사업을 조정하는 ‘준 컨트롤타워’ 수준의 협의체는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특히, 미래 산업 흐름의 변화에 계열사별 자율경영체제가 옳은 대응이냐라는 의문도 제기된다.

이 부회장의 ‘뉴 삼성’이 지향하는 삼성의 미래 모습, 즉 ‘수직통합화된 삼성’은 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는 역량을 하나로 모아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것을 지향한다. 융·복합이 대세를 이루는 미래는 어느 한 계열사의 역량만으로는 부족하며 이업종 계열사와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이 2014년 이후 추진해 온 ‘쪼개고, 붙이며, 팔고, 사오는’ 사업구조개편 작은 바로 그룹 차원의 ‘수직통합’을 이루겠다는 목표가 다분했다. 이는 이해관계가 다른 계열사간 격의없는 소통과 협력이 없으면 불가능 하며, 이러한 기능을 미전실이 해왔다. 미전실이 없어지지만 전자·생명·물산 등 3대 주력 계열사를 중심으로 ‘3두 체제’로 전환될 것이라는 소문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지주사 전환’ 삼성전자 통해 이 부회장 역할할 듯
현재 삼성은 이 부회장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경영권 승계작업이 진행중이었으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태’ 의혹으로 당분간 추진이 불가능해졌다.

이에, 지주사 전환을 검토중인 삼성전자의 역할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쪼갠 후 지주회사와 통합 삼성물산이 합병되는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있다. 삼성전자 주주인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전자에 요구한 바이자, 삼성전자 역시 내심 바라왔던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전자·생명·물산의 3두 체제로 유지한 뒤 삼성전자 지주사가 설립되면 기존 미전실 기능을 통합시켜 삼성의 전체 사업을 총괄하는 기능을 맡긴다는 것이다. 지주사는 기획이나 M&A(인수·합병) 등 전략적 의사결정은 물론 미래 신사업 발굴, 비주력 사업 부문의 매각 같은 결정도 합법적인 틀 안에서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오너인 이 부회장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의사결정을 맡게 된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쇄신안은 ‘삼성=오너’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한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면서 “그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삼성은 오너인 이 부회장과 전문경영인은 ‘종속’이 아닌 ‘수평’ 관계로 상호보완적 경영체제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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