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 이병철 창업주가 1938년 삼성을 세운 이래로 지배구조의 가장 큰 변화로 볼 수 있는 이번 조치는 ‘뉴 삼성’으로 가기 위한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는 분석과, 의사결정의 중심축에 따라 움직여온 삼성의 조직문화가 당분간 변화를 감내하지 못한채 혼란을 겪을 것이라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28일 삼성의 쇄신안 발표의 핵심은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을 해체한다는 것이다. 1959년 창업주 이병철 선대회장이 ‘비서실’을 만든 이후 삼성의 컨트롤타워는 다양한 이름으로 바뀌며 명맥을 이어왔다. 이 조직은 오너와 전문경영인 사이의 의견을 조율하고 절충해 그룹 차원의 경영결단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왔기에 ‘삼성경영 3대 축의 핵심’이라고 불려왔다.
여기에 또 다른 축이었던 계열사 사장단 회의도 폐지했다. 사장단 회의는 계열사 별로 소통을 하고,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함으로써 그룹 차원의 전체 그림을 그려 나가는 데 있어 의견을 모으는 기능을 했다. 미전실 해체가 기정사실화 된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박영수특별검사팀에 의해 구속 기소되면서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삼성은 당분간 사장단 회의를 통해 그룹 전체 사업을 조율할 것으로 예측되어 왔다.
삼성은 “미전실 해체에 따라 삼성 각 계열사들은 앞으로 자율경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가 독자적·자율적인 판단과 의사결정에 따라 경영을 해나간다는 뜻이다.
삼성이 계열사 자율 독자경영체제로 나아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비록 오너 기업이긴 하지만 삼성은 재계에서도 가장 선진화 된 전문경영인 최고경영자( CEO) 체제와 이사회 중심 경영을 구축해 유지해 왔고, 각 CEO들의 경영 능력도 오너 못지않게 뛰어나기 때문에 지배구조 변화가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뉴 삼성’이 지향하는 삼성의 미래 모습, 즉 ‘수직통합화된 삼성’을 그려나가는 데 있어 계열사를 하나로 모으는 중심 축이 사라졌다는 데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융·복합이 대세를 이루는 미래는 어느 한 계열사의 역량 만으로는 부족하며 이업종 계열사와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이 부회장이 2014년 이후 추진해 온 ‘쪼개고, 붙이며, 팔고, 사오는’ 사업구조개편 작은 바로 그룹 차원의 ‘수직통합’을 이루겠다는 목표가 다분했다. 이는 이해관계가 다른 계열사간 격의없는 소통과 협력이 없으면 불가능 하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는 “‘삼성’이라는 한 울타리에 있더라도 계열사간 교유의 문화는 존재하며, 이러한 기업문화의 단점이 다른 계열사와 충돌하면 더 이상의 협력은 이뤄질 수 없다. 이병철 선대 회장이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계열사간 이기주의를 가장 우려했었고, 이 부회장도 벽을 깨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이는 오너 총수가 풀어줘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재계에서는 삼성이 미전실과 사장단 회의를 보완하기 위해 3대 주력 계열사인 전자·생명·물산 중심 체제로 굴러갈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는다. 이들 3개 사는 그룹의 핵심 계열사이면서 다른 계열사들의 지분을 많이 쥐고 있어 사실상의 지주회사 또는 중간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디스플레이·전기·SDI·SDS 등 전자·전기·IT 분야 계열사 사장단끼리 모여 사업영역 구분 등 조정자 기능을 하고, 삼성생명은 화재·증권·카드·자산운용 등 금융 계열사의 업무 조율을, 삼성물산은 바이오·중공업 등 나머지 계열사를 관할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SK그룹의 CIC(회사내 회사) 제도를 벤치마킹해 계열사별 독립·자율경영의 고도화를 추진할 가능성도 높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일단은 계열사별 자율경영에 방점을 찍은 것이고, 향후 개선 방안에 대해서는 좀 더 검토를 거쳐야 할 것”이라면서 3두 체제 가능성을 배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