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중은 비뤄(碧羅)설산 산자락, 란창강이 내려다보이는 중요한 곳에 위치해 있다. 지난 100년 동안 천주교 선교사와 외국 탐험가들이 끊임없이 이곳을 찾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곳을 찾는 이가 많지 않았다. 메이리(梅里)를 돌아 위벙(雨崩)을 가본 베테랑 여행전문가들도 이곳을 모르는 경우가 있었다.
종교 갈등없이 사는 마을
‘츠(茨)’는 마을이라는 뜻이고 ‘중(中)’은 티베트어로 ‘육(六)’이라는 뜻이다. 민국 초기 이곳이 6개 마을을 관할해 츠중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아줘 아들의 이름은 장아웨이(張阿偉)로 세례명인 ‘데이비드’에서 따온 것이다. 그의 소개에 따르면 츠중촌의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모두 영문 이름이 있다. 여자아이의 이름은 대부분 ‘마리아’나 ‘테레사’다. 아줘의 집 주방은 인테리어를 새로 한 지 얼마 안 됐다. 새롭게 꾸민 공간에 짱족식 장식장인 팔보각(八寶閣)이 눈에 띄었다. 팔보각에는 쑤유차(酥油茶) 주전자 등 생활용 그릇이 놓여있어 행복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알고 보니 장아웨이와 약혼녀인 왕리펀(王麗芬)의 결혼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며느리의 종교가 티베트불교라는 것에 대해 천주교 신자인 아줘는 종교는 개인의 선택이므로 간섭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줘네처럼 츠중에는 한 집에서 여러 종교를 믿는 일이 흔하다. 마을의 관혼상제 때 천주교 가정에서 천주교 전례에 따라 행사를 치르면 불교 신자들도 우호적으로 참여한다. 반대의 경우도 그렇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모든 일에 상호작용하고 같이 사는 법을 터득했다.
역사의 산증인 츠중 성당
짱족 보루식 조방(碉房) 주택이 낮게 이어진 츠중촌에서 츠중 천주교 성당은 군계일학처럼 거대하다. 특히 돌출된 시계탑, 돔형 창문과 문은 주변 건축물과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이는 윈난(雲南)성 천주교 성당 중에서도 서양 건축의 특징이 강한 성당 중 하나다. 성당은 뜰 하나에 여러 건축물로 구성돼있다. 주요 건물은 동향으로, 중국식과 서양식을 결합한 벽돌 목제 구조이며 예배당과 시계탑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경내의 동, 남, 북 삼면에 있는 기와지붕으로 된 2층 건물은 선교사 숙소와 학교 교실이며 마구간과 주방, 포도원도 있었다.
츠중 성당은 100년 역사 동안 여러 번의 풍파를 겪었다. 이곳도 츠중의 과거를 알 수 있는 창이다.
1846년부터 로마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시짱(西藏) 교구를 설립하고 하느님의 복음을 신비한 시짱 설원고원에까지 전하려고 했다. 하지만 처음 파견된 선교사들은 실패했다. 짱족 사람들의 반대와 청나라 정부의 제한으로 선교사 7명은 라싸(拉薩) 진입에 실패하고 시짱에서 물러나 쓰촨(四川)성 바탕(巴塘)과 다젠루(打箭爐, 캉딩(康定))로 돌아갔다. 그 가운데 선교사 고틀러 등은 진사강을 따라 남하해 윈난성으로 들어가 ‘시짱 교구’ 관할 ‘윈난 지역구’를 구축하여 시짱 전도를 위한 또 하나의 거점을 만들려고 했다.
1861년 윈난성 짱족 지역의 상황을 파악한 시짱 교구는 프랑스 선교사 듀버마드 등 두 명을 지금의 더친(德欽)현 옌먼(燕門)향 츠구(茨菇)촌에 파견했다. 그들은 친구를 사귀고 선물을 증정하는 등 방식으로 현지 유지와 친분을 쌓아 그곳에 거주할 수 있게 됐다.
얼마 뒤 윈난성 짱족 지역의 첫 천주교 성당이 츠구촌에서 착공했다. 겹처마 박공 모임지붕식 구조의 건물이었다. 이곳을 근거지로 란창강을 따라 천주교를 전파하고 츠구 상류지역인 더친, 하류지역인 샤오웨이시(小維西) 등지에 성당을 각각 건설했으며 서쪽으로 비뤄설산을 넘어 누장 유역의 빙중뤄(丙中洛)까지 포교했다.
츠중촌에 천주교가 들어오기 전 마을은 12가구가 살았다. 리장(麗江) 나시(納西)족과 짱족 2개 민족이 살았고, 종교는 나시족의 동파교(東巴教)와 티베트불교 2개 밖에 없었다. 1914년 츠중 성당이 건설된 이후에는 한족, 짱족, 이(彜)족, 바이(白)족, 누(怒)족, 리쑤(傈僳)족, 나시족 등 7개 민족으로 늘어났고 종교도 천주교, 티베트불교, 동파교(1938년 동파교 교주가 병사한 이후 계승자가 없어 사라졌다) 세 가지로 늘었다. 츠중에서 천주교와 티베트불교는 서로 간섭하지 않고 공생하면서 아름다운 마을을 함께 가꿔나가고 있다.
친절하고 순박한 사람들
츠중은 더친현에서 가장 큰 강가의 평지이다. 이곳에서는 자동차 경적보다 새 소리와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더 많이 들을 수 있다. 간혹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리지만 눈 앞에 와야 확인할 수 있다. 꼬불꼬불한 오솔길이 떠들썩한 사람들과 격리시켜주고 아름다운 풍경이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츠중 사람들은 손님 접대를 좋아한다. 어디를 가든 주인은 새해 손님을 맞이하듯 극진히 대한다. 츠중 현지에서 생산되는 호두, 밤, 씨앗, 귤 등 다양한 먹거리와 자기집에서 만든 와인을 내온다.
“우리집에서 만든 와인을 맛보지 않겠습니까?” 우궁디(吳公底)가 우리에게 친절하게 물었다. 그는 츠중 천주교회 회장이다. 1996년 그는 시짱 옌징(鹽井)성당에서 노(老) 수녀에게 와인 양조 기술을 배웠고 더친현 최초의 와인 양조 전문 농가가 됐다. 현재 그는 매괴밀 3무를 재배하고 있으며 다른 농가에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 기술을 가르쳐주고 있다.
우궁디가 만든 와인을 한 모금 마시자 프랑스 옛 전통 양조의 맛이 물씬 느껴졌다. 츠중에서 재배하는 포도는 일반적인 포도보다 작다. 크기는 손톱 만하지만 알이 꽉차 있고 맛은 달면서 시다. 와인으로 만들면 맛이 깔끔하고 진하며 여운이 오래 남는다. 마을에서 만드는 와인은 대부분 자기집에서 마시거나 손님 접대용으로 쓴다. 때로 관광객이 몇 통씩 사가기도 한다. 집집마다 양조 방식이 조금씩 달라 맛도 다르다.
일요일은 마을 사람들이 츠중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날이다. 성당의 주임 신부는 베이징에서 파견된 야오페이(姚飛) 신부다. 올해 48세인 야오 신부는 네이멍구(內蒙古) 우란차부(烏蘭察布)시 출신의 몽골 사람으로 2008년 2월 츠중으로 부임받아 왔다. 그는 1951년 외국 선교사가 철수한 이후 처음으로 부임한 전임 신부다.
츠중 성당의 미사는 엄숙하지 않지만 감화력이 짙다. 아이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포대기에 싸인 아기들이 울어대지만 성가가 울려퍼지는 순간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 본 기사는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가 제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