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아베 신조 총리 취임 직후 추진한 ‘아베 노믹스’의 성과에 열광하던 일본 전자산업은 불과 1년 여 만에 충격적인 결과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자동차와 함께 일본 경제의 양대 축으로 전 세계를 호령했던 전자산업 무역수지가 7700억엔 적자로 돌아섰다. 같은 해 자동차 무역 흑자액은 12조 엔에 달한 것과 비교하면 전자산업의 부진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일본 언론들은 1990년대 초반 만해도 10조 엔에 가까운 흑자를 기록했던 전자산업의 적자 소식을 전하며 ‘몰락’이라는 표현을 썼다. 또한 그해 일본 내 전자산업 생산액은 약 11조 엔으로 2000년 달성한 최고액 26조 엔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전자산업 무역적자의 주된 원인은 컴퓨터 관련 장비와 통신장비 등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비롯됐다. ICT 분야의 2013년 적자액은 각각 1조6450억 엔, 2조 870억 엔으로 이를 합치면 3조7000억 엔을 넘는다.
메모리 반도체 부문을 통합한 엘피다 메모리, 시스템 반도체를 합친 르네사스 테크놀로지도 2012년 초에 경영 위기에 빠졌다. 엘피다는 회사갱생법 적용을 신청해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 인수됐고, 르네사스는 일본 산업혁신기구의 지원을 통해 자국 자동차 기업들이 투자해 구제됐다.
세계를 호령하던 일본 전자기업들의 완패는 스마트폰이라는 시대 흐름의 대세에서 밀려났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국내생산에서 채산성을 맞추지 못하던 일본 전자업체들은 해외 거점에 진출, 생산 기지를 건설, 제품을 제작해 판매하거나 자국으로 수입해 판매했다. TV와 오디오·비디오 기기, 백색가전 등 대부분의 전자제품에 이러한 생산·판매 전략을 취해 일본 전자업체들은 가격·품질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융합을 핵심으로 하는 ICT 산업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일본 전자산업은 피처폰에 이어스마트폰(태블릿 PC 포함) 사업에서 글로벌 지배력을 상실했다. 외부와 격리돼 독자적으로 생물이 진화하는 갈라파고스 제도를 빗대 ‘ICT산업의 갈라파고스’라고 불렸던 일본에 애플 아이폰 등 외산 스마트폰 수입이 급증했고, 외산폰은 일본 업체를 제치고 판매 상위권에 올랐다.
일본 전자산업의 더 큰 고민은 전자산업을 지탱해오던 부품산업도 2007년 수출액이 약 11조엔의 최고치를 기록한 뒤 감소세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자국 완제품 생산기업의 붕괴, 해외 부품기업들과의 경쟁 등이 겹치며 일본 전자산업은 현재도 구조조정을 지속중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북유럽 선진국인 핀란드도 마찬가지다. 핀란드는 세계 1위 전자통신업체 노키아(Nokia) 하나로 세계 일류국가가 된 나라다. 노키아는 1999년부터 2010년까지 10여 년간 부동의 휴대전화 판매기업으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40%에 육박했으며,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25%, 수출의 20%를 기여했다.
하지만 2006년 출시한 아이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며 쇠락해 2011년 휴대전화 사업부문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에 팔아넘겼다. 노키아가 쇠락하자 국가경제가 휘청거리며 재정상황이 어려워진 핀란드 정부는 복지정책을 줄이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