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양성모·이정주 기자 = 국내 1위 선사인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가능성이 커지면서 향후 미칠 파장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조선, 철강업 등 연관산업은 물론 IT전자, 자동차 등 국내 주요 산업계 역시 수출물량의 해상운송 차질 등 여파가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채권단이 최소한의 자구책으로 요구한 7000억원과 한진그룹이 내놓은 5천억원 안팎의 자구안간 간극이 끝내 좁혀지지 못한 것이다.
자율협약이 종료되는 시점인 9월 4일에는 그동안 동결됐던 채무가 다시 살아나기 때문에 이미 유동성 위기에 처한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밖에 선택지가 없다.
한진그룹은 이에 대해 “법정관리에 들어가는것을 피하면서 경영정상화를 추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서 “해외 채권자와 선주사들의 협조까지 힘들게 이끌어냈음에도 자율협약 종료 결정이 내려져 안타깝다”고 전했다.
◆‘빠른 의사결정’ 채권단의 엄격 잣대 적용
당초 마라톤 회의가 예상됐던 이날 채권단 긴급회의는 불과 1시간여 만에 끝났다. 이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용단없이 추가 지원은 없다'는 채권단의 원칙주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이날 “채권단은 영업 활동 부족 자금은 대주주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정상화 작업을 추진했다”며 “용선료 인하 및 선박금융 만기 연장 등은 일부 진전이 있었지만 부족자금 근본적인 해결에 대해 대안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5월 한진해운은 사옥매각 등을 통해 4112억원 규모의 유동성 확보 자구안을 마련해 채권단에 제시했다. 하지만 채권단은 실사결과, 내년까지 1조∼1조3000억원에 달하는 추가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되자 이에 대한 추가 지원계획을 한진측에 요구한 바 있다.
이 회장은 "특히 대주주 오너(조양호 회장)의 책임있는 모습이 없다는 판단 아래 수용 불가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했다.
채권단 입장에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상선의 정상화를 위해 현대증권을 1조2000억원에 매각한 한 만큼 한진그룹도 같은 원칙을 적용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아울러 채권단이 이미 한진해운에 대한 법정관리 가능성을 열어두고 익스포저(위험노출액) 대부분을 대손충당금으로 쌓은 점도 빠른 의견정리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채권단은 한진해운을 하루빨리 털어내는 것이 이득”이라고 말한 뒤 “조양호 회장이 대대적인 자산매각 등 용단을 내리지 않은 만큼 이는 곧 채권단의 빠른 입장정리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한진해운 청산시 매년 17조원의 손실 불가피
한진해운의 법정관리행이 유력시 되면서 이에 따른 손실규모도 관심사다.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부회장은 지난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마리타임코리아 해양강국포럼'에서 “한진해운의 청산은 매년 17조원의 손실과 2300여개의 일자리 감소를 불러온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주장의 논거로는 한진해운의 매출 소멸과 함께 화물 감소, 운임폭등 등을 꼽았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돌입하게 되면 컨테이너선 98척, 벌크선 59척의 억류로 120만개의 컨테이너가 정지하게 돼 물류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 아울러 장기계약 화주와의 관계 단절은 물론 화물 처리비용이 증가하는 역효과도 우려된다.
이에 대해 이 행장은 "17조원도 그쪽 나름의 근거가 있다고 보지만 우린 아니라고 본다"면서 "문제를 보는 시각에서 차이가 있다"고 짚었다.
반면 금융기관의 타격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채권단의 위험노출액은 약 1조200억원으로 이중 산업은행이 6660억원으로 가장 많고 KEB하나은행(890억원), NH농협은행(850억원), 우리은행(690억원), KB국민은행(530억원), 수출입은행(500억원) 등이다.
법정관리가 확정되면 채권은행은 해당 여신건전성 등급을 추정손실로 분류, 100%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그러나 한진해운의 익스포저에 대해 대부분의 채권은행들은 이미 충당금을 준비한 상태로 금융권 영향은 미미하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일반 사채권들의 피해는 예상보다 클 것으로 전망된다, 일반사채 1조2600억원, 공모사채 4200억원, 사모사채 7680억원 등의 가격 급락이 예상되고 있어서다.
이에대해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한진해운 협력업체와 해상 물동량 문제, 해운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 등 금융·해운산업 측면에서 여러 시나리오를 상정해 다각적으로 대응책을 검토했다"며 "준비해온 대책에 따라 부작용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상선-한진해운 합병 가능성은 낮아
일각에선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자산 매입을 통한 합병 시나리오도 제기되고 있다.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부회장은 “개별회사의 사활이 아니라 국가차원의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양대 원양선사 합병을 통해 경쟁력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대선사가 합병할 경우 최소 100만TEU 선복을 확보할 수 있어 5~10%의 원가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108만4000TEU의 수송능력을 갖추게 돼 중국 COSCO에 이은 글로벌 5위의 국적선사가 탄생하게 돼 국제적인 입지구축 또한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임종룡 위원장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 가능성에 대해서는 "현재 상황에서는 가능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해운업계 관계자도 “현대상선이 현대증권 매각 등을 통해 간신히 정상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한 상황에서 유동성 부족으로 법정관리에 몰린 한진해운을 끌어안을 순 없다”면서 “채권단이 요구중인 한진그룹의 추가지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