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 1980년대 중반 미국에 망명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향을 현지 공관이 우리 정부에 보고하는 외교문서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정보 수집 관련자로 등장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부가 17일 공개한 1980년대 외교문서에 따르면 1985년 1월 7일 유병현 주미 한국대사는 이원경 외무장관에게 미국 학계·법조계 인사 130여 명으로 구성된 '김대중 안전귀국 보장 운동'(campaign to assure a safe return for KIM DAE JUNG)이 김 전 대통령의 안전 귀국을 요청하는 연명 서한을 전두환 당시 대통령 앞으로 보낼 예정이라고 전문 보고했다.
이런 내용은 당시 하버드 대학에 연수 중이던 반기문 참사관이 하버드대 교수로부터 입수해 주미 한국대사관에 알렸다고 유 장관은 전문에 적었다.
전문에 언급된 '반 참사관'은 당시 외무부 소속으로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에서 수학하던 현재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언급한 것이다.
주미 대사관은 나흘 뒤인 1월11일 이 장관에게 보낸 전문에서 '김대중 안전귀국 보장 운동'이 당시 전두환 대통령 앞으로 보낸 서한을 첨부했다.
'김대중 안전귀국 보장 운동'은 서한에서 "민주주의와 인권문제에 대한 헌신적 노력으로 세계에서 존경을 받는 김대중이 귀국할시 안전과 자유를 부여하는 것은 필요불가결한 요소일 것"이라며 "국내적으로 긴장을 완화하고 신뢰를 구축하려는 노력은 모든 국가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런 노력이 귀국의 1985년 국회의원 선거,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올림픽 게임과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화합을 성취하는데 중대한 요소라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한국 정부 당국자들은 미측 인사들과의 면담에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해 "교활하고 믿지 못할 인물"(1월 29일 외무부 보고), "간교한 인물"(2월 9일 주한미국대사관 1등서기관과 외무부 미주국장 면담) 등 인신공격성 발언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정부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귀국 후 신변 처리 문제가 자국 여론에 미칠 영향을 주시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폴 월포위츠 당시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1월 4일 유병현 대사와 만나 "김(대중)이 귀국 후 재수감되면 미국 정부는 의회로부터 대단히 거센 압력과 언론의 성화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월포위츠 차관보는 국무부가 김 전 대통령을 면담할 경우 "선거 전 귀국이 현재의 한국 내 정치발전, 민주발전에 저해 요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전달할 것"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또 1980년 10월 북한의 제6차 노동당대회를 앞두고 당시 우리 정부는 재외공관을 통해 북한이 초청한 인사의 동향과 이들의 방북 저지를 위해 긴밀한 외교전을 펼쳤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북한의 제6차 노동당대회 개최 이후에도 참석 인사들을 적극 접촉, 북한 주장의 허구성과 실상을 폭로하는 한편 한반도의 현실과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