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광연 기자 =킹소프트를 떠난 레이쥔은 3년 정도 엔젤투자자로 활동하며 휴식과 배움의 시간을 가졌다. 이미 막대한 부와 명성을 모두 가진 레이쥔이 현장에서 한 발 물러나 여유로운 삶은 살 것이라는 예상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3년 동안 창업을 위한 시장조사와 트렌드 파악을 하는 데 주력했다.
레이쥔이 스마트폰 시장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건 2009년이었다. 문제는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는 인정받는 레이쥔이지만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초보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창업 7인방은 뛰어난 전문성을 갖춘 인물들이었다. 린빈은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을 거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으며 저우광핑은 모토로라 수석 엔지니어 출신의 하드웨어 전문가였다. 리완창은 레이쥔과 킹소프트에서 10년 넘게 한솥밥을 먹은 프로그래머였다.
구글차이나에서 R&D 팀을 이끌었던 홍펑, 마이크로소프트 수석 엔지니어 황장지, 베이징 과학기술대 공업디자인과 학과장 류더까지 각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했던 7명이 뭉친만큼 업계의 기대는 뜨거웠다.
2010년 4월 샤오미테크를 설립한 레이쥔은 스마트폰의 미래를 컴퓨터화, 인터넷화, 만능화라는 기능적 측면과 혁신, 인간진화, 감성이라는 디자인적 측면의 총 6가지 키워드로 전망했다. 특히 레이쥔은 샤오미가 모바일 인터넷 기업이라는 점을 크게 강조했다. 샤오미의 로고인 ‘MI’ 역시 모바일 인터넷(Mobile Internet)을 의미한다.
이런 전략에 맞춰 샤오미가 제일 먼저 심혈을 기울인 건 스마트폰이 아닌 운영 시스템이었다. MIUI(중국명 미유아이)라는 이름의 OS는 2010년 8월 내부 테스트 버전을 출시한 후 불과 1년만에 전 세계에서 50만명 이상의 고객을 확보했으며 2년후에는 6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OS로 자리 잡았다.
레이쥔은 모바일 SNS 플랫폼도 적극 공략했다. 2010년 12월 출시된 ‘미랴오’는 기대 이하의 반응을 얻었지만 다음해 5월 음성기능을 추가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중국 최초의 SNS 음성 플랫폼이기도 한 미랴오는 2012년 동시 접속자수 100만명 돌파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미유아이와 미랴오는 스마트폰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에 앞서 샤오미에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킨 중요한 제품들이다. 무엇보다 레이쥔이 강조했던 ‘샤오미만의 스마트 생태계 구축’의 기본이 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또한 미유아이와 미랴오는 샤오미만의 두터운 팬층을 만드는 데도 큰 공헌을 했다. 독자적 OS와 플랫폼을 통해 고객들의 취향을 제대로 공략했기 때문이다. 이 두 제품의 발판삼아 스마트폰 신흥강자 샤오미가 탄생한 셈이다.
레이쥔은 샤오미 창업을 되돌아보며 “40세에 새롭게 시작한 것이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인간은 꿈이 있어 위대하고 나 역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고 담담한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모바일 인터넷 분야에서 확실한 성과를 거둔 레이쥔은 곧바로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인 스마트폰 시장 공략에 돌입했다. 전 세계를 뒤흔든 ‘미 시리즈’의 성공 신화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