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조현미·한지연 기자 = 시작은 소박했다. 흔히 골수이식으로 불리는 조혈모세포 이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백혈병 등 암 환자에게 보다 빨리 이식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때 생각한 것이 조혈모세포가 들어있는 신생아의 탯줄혈액(제대혈)을 한 데 모은 은행 설립이다. 당시 우리나라에 골수은행은 있었지만 제대혈은행은 없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삼성서울병원 임상병리과 교수로 있던 양윤선(50·사진) 대표는 이를 위해 안정적인 교수 자리를 포기하고, 2000년 6월 메디포스트를 설립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백혈병을 비롯한 암 환자들이 골수기증자를 못 찾아 이식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자주 접했습니다. 이 때 가족 제대혈은행과 난치질환 치료 연구의 활성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병원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이 경험이 메디포스트를 만든 결정적인 이유였죠."
메디포스트 창업 당시 국내에는 벤처 붐이 거셌다.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의 벤처가 주를 이뤘다. 메디포스트 같은 바이오벤처는 흔치 않았다. 바이오벤처 창업 붐이 분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고령화시대를 맞아 바이오산업이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으면서다.
다른 벤처와 마찬가지로 메디포스트도 상당한 부침을 겪었다. 바이오에 대한 시장의 이해도가 떨어지면서 많은 오해도 샀다. 난치성 질환을 치료하는 재생의학, 이 가운데서도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제가 유망하다는 전망이 있을 뿐 국내 시장은 미개척 상태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무자격 제대혈 업체 난립,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 등도 겹쳤다. 이 여파로 코스닥 상장과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양 대표는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으로 이를 이겨냈다.
"원래 도전을 좋아하거나 용감한 성격이 아니라 사업이 어렵다는 걸 알았더라면 도전도 안 했을 거 같습니다. 지금까지 고비가 참 많았지만 다행히 절망하고 포기하거나 낙담을 오래 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지인들의 조언도 이런 상황들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됐죠."
◆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 11년만에 결실
양 대표는 회사 창업과 함께 제대혈은행 사업을 차근차근 진행했다. 제대혈에는 적혈구·백혈구·혈소판 등을 만드는 조혈모세포가 골수보다 풍부한다. 최근에는 제대혈에 연골·뼈·근육·신경 등의 장기조직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간엽줄기세포가 다량으로 들어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활용 범위가 뇌성마비·발달장애 등 뇌신경계 질환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가족제대혈은 제대혈 보관자들이 성인이 된 후 림프종이나 암에 걸렸을 때 이 제대혈로 기존 말초혈액 조혈모세포 이식을 대체할 수 있다. 이 시술은 항암치료 이후 제 기능을 못하는 골수를 재생하기 위해 이뤄진다.
메디포스트는 이를 위해 제대혈은행 '셀트리'를 설립했다. 셀트리는 현재 신생아 21만여명의 제대혈을 보관 중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수다. 시장의 점유율은 43%에 달한다.
제대혈은행 설립과 함께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제 개발에도 나섰다. 창업 이듬해부터 270억원을 들여 11년간 연구를 거듭한 끝에 첫 결과물이 나왔다. 퇴행성 관절염 치료용 줄기세포 치료제인 '카티스템'이다.
카티스템은 2012년 1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세계 첫 동종 줄기세포 치료제로 허가받았다. 동종(同種) 줄기세포는 다른 사람의 몸에서 채취한 줄기세포를 이용한 것이다.
같은 해 5월부터는 환자 시술이 이뤄졌다. 지금까지 2500여명이 카티스템 시술을 받았다. 전 축구대표팀 감독인 거스 히딩크도 지난해 카티스템 시술을 받고 건강한 무릎을 되찾았다.
양 대표는 "카티스템의 월 투여건수가 매년 2배 이상 늘고 있다"면서 "전문의약품으로 홍보가 불가능하고 아직 줄기세포 치료제가 대중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긍정적인 시장 정착이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해외 진출도 활발히 추진 중이다. 호주·뉴질랜드·인도와는 수출 계약을 마쳤고, 홍콩에서는 2013년 첫 시술이 이뤄졌다. 미국에서는 제1상과 전기 제2상 임상시험의 임상 대상자 투여를 마치고 치료 경과를 관찰 중이다.
지난 3월에는 중국 경원생물과기유한공사와 합작투자회사(JVC)를 설립했다. 합작사를 통해 카티스템의 중국 내 생산과 임상시험을 위한 작업을 벌이고 있다.
◆ 자신이 쓰는 화장품 들고 중국시장 공략
올 여름에는 화장품 사업에 도전장을 던졌다. 이 역시 줄기세포를 이용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제대혈 줄기세포는 손상된 조직 회복과 세포 재생 능력이 뛰어나고, 면역 거부 반응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양 대표는 줄기세포를 증식시키는 배양액이 피부에 좋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화장품 개발에 매달렸다. 화장품 브랜드 '셀피움'이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셀피움은 줄기세포 배양액을 아낌없이 넣고 피부에 잘 흡수되도록 첨단 리포솜 기술도 도입했다. 반면 가격은 대표 낮췄다. 기존 줄기세포 배양액 화장품과 비교해 최대 10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하다.
양 대표는 셀피움의 홍보대사를 자처한다. 유독 민감한 피부를 가진 그 스스로 셀피움의 남다른 효과를 경험해서다.
"언제부터인지 마스크팩만 바르면 피부에 문제가 생겼고 결국 공포증까지 생겼어요. 그런데 셀피움은 피부미용 효과가 빼어난 데다 이런 걱정이 전혀 없어요."
셀피움의 시장 반응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시판 2주 만에 초도 물량이 완판 됐다. 이에 힘입어 해외 진출도 서두르고 있다. '불로장생'에 대한 욕구가 높은 중국이 주요 타깃이다.
지난 10일에는 중국 마케팅 전문기업인 에이트차이나와 현지 유통 계약을 체결했다. 에이트차이나는 조만간 중국 완다그룹 등이 운영하는 화장품 매장과 주요 홈쇼핑,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셀피움을 공급할 계획이다.
양 대표는 중국 시장 진출에 자신감을 보였다.
"최근 3개월간 중국에서 시험 판매를 실시해 경쟁력에 대한 검증을 마쳤습니다. 중국 진출을 시작으로 셀피움의 세계 시장 진출이 가속화될 것으로 봅니다."
◆ "바이오 스타트업, 남과 다른 새로운 도전에 나서라"
'바이오벤처 1세대'인 양 대표는 국내에 더 많은 바이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만들어길 바란다. 더 많은 바이오기업이 만들어질수록 미래 세계경제를 선도할 핵심산업인 바이오 분야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해서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의 바이오사업 진출에도 긍정적이다.
양 대표는 "바이오산업은 작은 창의적 아이디어로 시작해서 모멘텀(성장동력)을 만들고 이를 통해 사업을 키울 수 있는 분야로,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창업을 많이 해야 한다"며 "생명공학 분야의 훌륭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바이오 산업에 뛰어드는지가 우리나라의 미래 바이오 전망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창업기업들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 마련이 중요하다"며 창업 바이오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도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 창업자들에겐 다른 기업이나 벤처의 창업 아이템으로 취하거나, 회사가 어렵다고 이런저런 사업에 투자하는 것은 경계할 것을 당부했다.
"남을 쫓아가는 것은 성장에 한계가 있는 만큼 새로운 데 도전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당부하자면 일관된 기업 정체성 안에서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변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아이템으로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