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11월 25일은 아산(峨山)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한국 기업가 정신의 최정점에 있는 그가 현역에서 활동했던 시기는 한국경제가 고도의 성장을 거듭했다. 축복된 자리이지만 2015년 한국경제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기업가 정신마저도 쇠퇴해 버렸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 명문대를 나오지 않으면 성공하기는 힘든 것인가?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정말로 힘이 든다. 해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은 지금의 현실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소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내가 사업을 해서 성공을 거둔 것은 그 당시 사회가 발전하지 않았으니까 못 배워도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가 막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에도 좋은 대학교를 나오면 훨씬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그 때와 달리 지금은 왠만한 학생들은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지금 명문대와 비명문대의 격차는, 제가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의 소학교와 명문대의 격차와 비교한다면 훨씬 적은 격차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불리한 지점에 있는 사람이 유리한 지점에 있는 사람과 똑같은 노력을 해서는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점이다. 명문대를 나오지 않은 사람이 명문대를 나온 사람과 똑같이 노력해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좋은 학교를 나온 사람이 더 유리한 곳에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한창 뛰어 놀고 싶은 10대 시절에 밤을 세워가면서 공부를 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불리한 지점에서 시작하는 사람은 몇 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가면서 따라잡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자신의 학벌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회생활 속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많은 것을 습득하고, 더 빨리 행동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물론 좋은 학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그저 학벌만 믿고 놀지는 않을 것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학교에 간 사람들은 학교를 나와서도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열심히 노력한다’는 말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남들보다 훨씬’이라는 수식어가 앞에 붙어야 한다. ‘따라 잡는다’는 말은 남보다 더 빨리 뒤를 쫓는다는 것이다. 남과 똑같은 속도로 쫓아가기만 한다면 언제까지나 뒤만 쫓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선진국과 큰 격차로 뒤떨어져 있던 시대의 자세와도 같다. 선진국과 똑같이 노력하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저만치 앞에서 뛰어가는 선진국의 뒤통수만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선진국이 50년 걸려서 한 일이라면 우리는 10년 만에 해야 하고, 선진국이 10억원을 들여서 한 일이라면 우리는 1억원으로 해내야 안다. 분명한 것은, 공부든 사업이든 불리한 쪽에서 유리한 쪽을 따라잡는 것은 정말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더 어려워질 수는 있지만 결코 ‘가능성 제로’가 되지는 않는다. 바꿔 말하면 기울여야 하는 노력은 더 많아지겠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학교를 떠난 뒤라고 해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작은 것이라도 배우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당장은 필요 없어 보이는 것이라고 해도 나중에 얼마든지 도움이 될 수가 있다. 저 역시도 잠깐이나마 변호사를 꿈꾸면서 공부했던 법에 대한 지식이 나중에 사업을 할 때 큰 도움이 되었고, 어린 시절 서당에서 배웠던 한학은 살아가면서 삶의 지혜를 깨닫는 데 큰 밑천이 되었다. 부기학원에서 배웠던 장부 정리 지식이 첫 직장이라고 할 수 있는 쌀가게 점원 시절에 큰 도움이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모두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 아니었지만 제가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배워서 손해될 것은 없다.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배울 수 있는 포용력과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의 삶은 대학교 전공만 가지고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폭이 넓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남보다 더 노력한다고 해서 처음부터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한동안은 ‘내가 훨씬 더 노력하고 잘 하는데도 사람들은 학벌 좋은 사람만 인정한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점점 더 참을성이 없어져가고, 빨리 좌절하고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중간에 포기해버리면 그동안 들었던 노력은 결국 시간과 노력의 낭비일 뿐이다.
제가 농사만으로는 언제까지나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해 서울로 도망쳐 나올 때마다 아버지는 찾아오셔서 나를 데리고 돌아가려고 하셨다. 두 번, 세 번을 도망쳐도 아버지는 그 때마다 저를 인정하지 않고 기어이 데리고 내려왔다. 만약 두세 번 도망쳐 나왔다 아버지에게 붙잡혀 고향에 내려왔을 때, 꿈을 포기하고 고향에 눌러 살았다면 현대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네 번째로 고향을 도망쳐서 쌀가게에 취직하고, 자리를 잡은 뒤에야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선입견을 깨고 인정을 받는 것은 그만큼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좌절하지 말고 계속 부딪쳐서 노력해야 한다.
<출처: 현대경제연구원(2011), ‘정주영 경영을 말하다’, 웅진씽크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