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포스트]'장사'하는 이들을 위한 변명

2015-01-1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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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강규혁 기자 =서울 지하철 4호선 사당역 근처에는 이른바 먹자골목이 발달했습니다. 인근 방배동과 사당동 주민은 물론,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는 직장인들이 자연스레 운집하는 장소이다 보니 일찍부터 상권이 형성됐습니다.

음식점에서부터 술집, 각종 프랜차이즈에 이르기까지 그 수와 종류도 다양합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수 많은 자영업자들이 명멸하는 곳이지만 그래도 서울 시내 주요 상권 중에서는 변화의 폭이 적은 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 사장은 이 곳에서 20년이 넘게 갈빗집을 운영해 온 중견 소상인입니다.

그가 사업을 시작하던 해에 태어난 걸그룹 소녀시대의 멤버 대부분과 수영선수 박태환은 올해로 27살이 되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터줏대감'이나 지역사회에서 '방귀깨나 뀌는' 명사는 아니지만, 긴 시간 갖은 고생과 노력 끝에 자신만의 영역을 확실히 한 케이스입니다.

그런 김 사장이 최근 사업을 접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실 최근이라고 하기도 민망합니다.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건물주에게 장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지만 그조차도 뜻대로 되지 못했습니다. 

우선 김 사장의 갈빗집 자리에서 새롭게 장사를 하겠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경기침체와 내수부진은 이미 주요 경제 현안과 정책, 기사의 '클리셰(Cliche)'로 자리잡은 지 오래입니다. 어쩌면 이런 불경기에 온갖 리스크를 안고, 수백만원의 임대료를 감당하며 호기롭게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사람이 없는 게 당연한 일일지 모릅니다. 김 사장이 좋아했다던 노래 '장사하자'는 이제 상황 파악 못하는 옛 시절의 노래가 될 판입니다.

복잡하게 얽힌 권리금 문제도 골칫거리입니다. 김 사장은 자세한 사정을 밝히는 것을 꺼려했지만, 이는 숱한 자영업자들의 최대 애로사항입니다. 지난해부터 상가권리금의 법제화 추진과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현실에서의 실질 체감도와 효용성은 한참 떨어집니다.  

김 사장은 '그간 해 온게 있는데 지금 좀 어렵고 손해 좀 본다고 해서 큰일날 게 있느냐', '엄살 좀 그만 부려라' 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했습니다. 외부에서 보면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되짚어 본 27년간의 사업 과정은 참으로 지난(至難)했습니다. 상권에 자리잡기까지 들인 공과 노력, 점차 치열해지는 인근 업체들과의 경쟁 속에 주기적으로 반복됐던 매장 인테리어, 사업자금 융통을 위한 금융기관과의 줄다리기 등 이루 말할 수도 없이 많은 어려움을 거쳐온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판단은 냉정합니다. 제대로 된 노력이나 자생의지가 부족했으니 폐업이나 사업철수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죠. 소상공인을 이른바 '구조조정 대상'으로 인식하는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는 약 284만개의 소상공인 사업체가 존재합니다. 이중 창업동기가 '생계유지'인 곳은 10곳 중 8곳(82%)이 넘습니다.

자영업자가 무한경쟁의 정글 속에서 1년 간 살아남을 확률은 60%대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창업 후 5년 뒤 70%가 폐업하죠. 이런 지옥도나 다름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20년을 넘게 버텨 온 김 사장은 행운아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김 사장은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다고 토로했습니다. 정부가 세계 경제 위기와 국내 경기 둔화와 부진 속 대기업들의 '리스크 관리'를 각종 지원책을 동원해 돕는 것처럼, 소상인들도 마음 편하게 장사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됐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흔히 여섯 다리만 건너면 세상 모든 사람들과 연결된다고 합니다. '케빈 베이컨의 6단계(Six degrees of Kevin Bacon)'죠.

그런데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생(生)을 유지하기 위해 '장사'를 합니다. 여섯 다리는 커녕 한 다리만 건너도 하루하루 어렵게 장사하는 분들이 넘쳐납니다.

물론 '어렵다 어렵다 해도 장사만 잘 하는 사람만 많더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변명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소상인들이 처한 상황은 여전히 차갑고 무겁습니다. 모쪼록 새해는 이 '장사'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평안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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