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홍종선 기자 = 드라마 '서울의 달'(1994)에서 한석규를 보았을 때 참 좋은 배우가 나왔구나 싶었다. 영화 '초록물고기'(1997)의 마지막, 공중전화 박스에서 형과 생애 마지막 통화를 하는 막동이를 보면서 또 불과 6개월 뒤 '넘버3'(1997)를 통해 넘버2가 되고자 몸부림치는 깡패 태주로 완벽히 변신한 한석규를 보면서 연기의 천재 모짜르트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2014년 세밑. 모짜르트 한석규는 살리에르가 됐다. 시대를 앞선 패션감각을 천부적으로 타고난 이공진(고수 분)의 재능을 아끼면서도 질투에 분노가 끓는 어침장 조돌석은 피나는 노력으로 왕의 옷을 지을 만큼 최고의 실력을 갖추었지만 천재 모짜르트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살리에르 그 자체다.
왕을 향한 충성심과 자기 분야의 내공을 갖춘자로서의 위엄과 이공진을 향한 어른다운 인정과 보살핌, 그리고 그 이면에 자리한 절망감과 어떻게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실력 차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통제 불가능한 질시…이 복잡하고도 표리부동의 미묘한 감정을 훌륭히 연기해 낸 한석규는 역시 연기의 모짜르트다. 못난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 절정 1초 전 지어 보이는 묘한 웃음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듯하다.
아름답기는 박신혜 또한 그러하다. 드라마 '상속자들'과 '피노키오'를 통해 건강하고 맑은 배우라는 장점을 익히 알린 배우지만 스크린으로 옮겨 오니 반짝반짝 빛난다. 일국의 중전다운 기품과 단아함, 마음 속에 비애를 안고 살아가는 촉촉한 슬픔을 온몸으로 발산한다. 누구라도 보호하고 사랑해 주고 싶은 고전적 여인을 박신혜가 만들어 냈다.
사실 <상의원>은 명품 연기의 향연이다. 말 그대로 축제요 잔칫상이다. 영화에 줄곧 큰 웃음을 주는 마동석의 넉살 좋은 연기, 중전과 이공진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며 코믹의 잽을 연신 날리는 김재화, 마동석과 콤비를 이뤄 간간이 박장대소케 하는 배성우는 <상의원>의 웃음 3인방이다. 심혈을 기울여 뜨거운 연기를 펼치는 한석규, 고수, 박신혜가 무르익게 하는 팽팽한 긴장감에 이완을 주고 재미를 책임진다.
왕이 된 유연석의 연기도 칭찬할 만하다. 영화 <건축학개론> <늑대소년>의 강렬함은 어디 갔나 싶을 만큼, <제보자>의 제보자 연구원 역할은 아쉬웠는데 말끔히 지웠다. 자신에 앞서 먼저 왕이 됐던 형에 대한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가는 왕, 센 자존심 만큼이나 상처를 두려워하는 연약함을 동시에 지닌 왕을 설득력 있게 연기했다.
그 밖에도 이루 이름을 열거하지 못한 배우들이 출연 분량의 차이는 있되 배역의 크기는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제 몫을 충실히 해냈다. 다만 사극에 어울림이 덜한 이유비의 뾰족한 턱과 코는 아쉽다. 그럼에도 몸을 사리지 않고 어여쁜 쇄골과 가슴골을 드러내며 농염한 연기를 펼쳐 <상의원>의 섹시 아이콘 역할을 톡톡히 한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상의원>은 지난 22일 개봉한 뒤 일주일 동안 55만명이 관람했다. 주간 박스오피스 5위의 성적이다. 쫄깃한 스토리 전개, 공들은 영상과 의상, 무엇보다 배우들의 명연기를 생각할 때 보다 많은 관객의 선택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