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홍종선 기자 = 강계열 할머니의 애닯은 소리, 아흔살 할머니라고 믿기지 않는 '아기 같은' 곡소리.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감독 진모영·제작 아거스필름)는 할머니의 울음으로 시작됩니다. 스물일곱 살 후배와 마흔다섯 선배는 몰입 속에 영화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내 가을 단풍을 빗자루로 썰다 서로에게 낙엽을 끼얹는 할머니와 다섯 살 많은 조병만 할아버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스물일곱 후배는 주름진 노인들의 장난기 어린 모습이 보기에 좋은지 배시시 웃습니다. 마흔다섯 선배는 이제 막 시작된 영화, 별다른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눈물을 훔칩니다. 얼마나 서로를 아끼면 아흔 넘어 저런 놀이가 가능할까에 한 번 놀라고, 두 사람이 함께 넘었을 인생역정의 고비에 식기는커녕 더욱 따스해진 사랑의 온기에 두 번 감탄하고, 낙엽 사이로 서로에게 던지는 ‘설레는 눈빛’에 세 번 부러워 눈물이 납니다.
강계열 할머니와 조병만 할아버지가 서로에게 물을 튀기고 눈덩이를 던지며 장난을 이어가는 사이 영화는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할아버지의 95년 생애도 끝을 향해 달립니다. 영화의 첫 장면, 사랑하는 이를 언 땅에 묻고 돌아서는 할머니, 떨어지지 않는 발길에 차가운 눈 위에 주저앉아 슬픔을 토해 내는 모습이, 다시 눈앞에 펼쳐집니다. 영화의 80분을 함께하는 동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76년 결혼생활로 빚어진 깊은 사랑이 마음 깊이 들어온 스물일곱 후배와 마흔다섯 선배는 함께 숨죽여 웁니다. 내 할배도 아닌데 먼저 떠나느라 미어졌을 가슴이 아른거려 미어지고, 내 할매도 아닌데 사랑하는 이를 보내고 어떻게 혼자 살아갈까 안쓰러워 뜨거운 덩이가 목을 타고 넘어오는 게 똑같습니다.
조부모의 76년 역사성에 비하니 60년 시대의 아픔을 짚어내고 아버지로서의 삶에 존경심을 표한 영화 <국제시장>(감독 윤제균‧JK필름)이, 함께한 세월만큼 깊어진 노부부의 사랑에 비하니 원수 집안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요절해 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울고 갑니다. 실화의 힘, 사랑의 아름다움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쯤은 돼야 실화라고,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듯합니다. 웬만한 사람은 흉내 낼 수 없는 가족사랑, 혹은 연인의 사랑이라 멀게만 느껴지는 스토리가 아니라 뽐내지 않고 조용히, 그러나 힘 있게 보여 주는 진짜 사랑. 그것이 리얼리티(reality‧현실감)가 아닌 리얼(real‧실제)의 힘이겠지요.
조병만 할아버지가 한낮에도 이부자리를 털지 못하고 누워 밭은기침을 끼룩거릴 때, 강계열 할머니는 아궁이에 앉아 떠날 이의 옷가지와 이불을 태웁니다. 한 번에 다 태워 주면 무거울까봐 틈틈이 여름옷, 겨울옷, 봄가을옷을 태워 낭군의 새 세상 매무새를 준비합니다. 할머니가 이승에서 태운 것은 정말 할아버지가 저승에서 입을 옷이었을까요. 추적거리는 여름비에 들이찬 방의 한기를 내몰고, 사랑해도 또 사랑해도 계속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를 이제는 보내야 함을 알기에 혼자 남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요.
할머니, 여전히 고운 반지 손가락에 끼고 단정한 옷매무새로 할아버지 곁에 갈 날을 기꺼이 기다리고 계신가요. 오늘도 건강 속에 정정하신지 궁금한데 어느 분이 소식을 전하셨네요, 가족들과 함께 지내신다고요. 5일째 온갖 국내외 대작 다 제치고 1등으로 많은 관객이 두 분의 얘기에 공감하고 배우고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얘기보다 더 반갑습니다. 먼저 간 딸 다섯 아들 하나에 사랑하는 서방님, 그리고 할머니와 또 다른 여섯 남매들. 저쪽 하늘에도 이쪽 세상에도 일곱 명씩 가족이 단란하네요. 모쪼록 할아버지 보고 싶다 너무 서두르지 마시고, 오래도록 강건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