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에네스 카야와 '형제의 나라' 터키

2014-12-0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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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회담' 단체 포스터[사진제공=JTBC]

아주경제 홍종선 기자 = '총각 행세 논란'으로 물의를 빚은 에네스 카야에 대한 비난 여론이 뜨겁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에네스 카야와의 SNS 메신저 내용을 한 여성이 공개할 때만 해도 '메신저 이미지 조작설'이 제기될 만큼 대중은 그를 믿었다. 피해 여성이 연이어 등장할 때도 팬들은 침묵만이 답이 아니라며 입장 공개를 촉구했다. 모국인 터키로 떠났다던 그가 국내에 머물고 있음을 확실히 하며 법적 대응으로 모든 사실을 밝히겠다고 했을 때, 대중은 기존의 폭로와 배치되는 '반전'을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관계를 맺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앞뒤 꽉 막혀 조선시대 선비로 보였던 '터키 유생'을 향한 민심은 돌아섰다. 공식 사과문을 발표해도 사람들의 마음은 냉랭하기만 하다.

에네스 카야 사건을 보며 몇 가지 우려가 앞선다. 먼저 에네스 카야는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2014년 물씬 달아오른 다문화가정과 해외이주민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에 찬물을 끼얹었다.

어렵지않게 주변에서 다문화가정을 접할 수 있고 외국인 노동자를 보게 됐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이 경직돼 있던 게 사실이다. 순혈주의에 근거한 '우리는 배달민족'이라는 울타리는 꽤나 높았다. 영화 '초능력자'(2010)에 주인공 임규남(고수 분)의 친구로 외국인이 등장하고 영화 '마이 리틀 히어로'(2012)에 '색깔 있는' 소년들이 주연급으로 출연해 감동과 웃음을 주어도 '우리는 하나, 너희는 남', 꽁꽁 언 마음은 쉽게 녹지 않았다.

방송의 힘은 대단했다. 종편 JTBC에서 '비정상회담'을 지난 7월 시작할 때만 해도 '관심 밖'에 있었다. 한국에 살고 있는 각국 청년들의 솔직한 한국 얘기에 예능 코드가 더해져 '새로운 웃음'을 유발하자 대중은 관심 영역 안에 '국적 다른' 그들을 들여놓았고, 회를 거듭할수록 호감도를 키웠다. 종편의 성공 패턴은 지상파에서 답습되기 마련. 지난 11월 MBC는 보다 오락성을 가미, 외국인 청춘남녀들의 1박2일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헬로 이방인'을 선보였다. 지난해 11월 시작해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던 EBS '다문화 고부 열전'도 새로이 시청자 눈에 들었다.

외국인에 대한 뿌리 깊은 선입견이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TV 전파의 초능력을 타고 일단 국민들의 마음에 둥지를 틀기 시작한 외국인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에게 경계의 눈초리를 다시 세우게 한 에네스 카야는 '초능력자'와 '비정상회담' 출연으로 한국인과의 심리적 거리를 한껏 좁히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또 하나의 우려는 에네스 카야의 국적이 터키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터키에 가 본 사람들은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여기는 그들의 호의에 깜짝 놀란다. 당나라에 맞서기 위해 힘을 합했던 고구려와 돌궐의 연합을 기억하고, 지금까지 'Made in Korea' 제품을 찾아쓰는 그들이다. 현대차가 거리에 흔하고 삼성전자 휴대전화를 쓰고 LG전자의 냉장고를 집에 들이는 이유가 한국 제품의 경쟁력만이 아니다. 머리 검은 사람만 보면 "Are You Core?"라고 물으며 한국인인 게 확인되면 환한 '형제의 미소'를 보내는 터키인들의 호의가 현실적으로 드러난 결과다.

뿐인가.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참전 16개국 중 네 번째로 많은 많은 1만5000여 군인이 '형제의 나라에 동란이 났다"며 참전을 자원했고, 우리나라에 와서는 자신들의 식량을 피난민과 나눴고 한국 최초의 고아원인 '앙카라학원'도 터키 군인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땅의 여성들을 지켜 단 한 명의 혼혈아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떠난 그들이다. 에네스 카야 개인의 실수로 인해 터키와 터키인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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