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국회의원 선거구별 인구편차를 3대 1로 허용한 현행 선거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정치권에 ‘선거구제 개편’이란 화약고가 투하됐다. 한국 정치는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독식하는 거대한 카르텔 속에 갇혀있다. 2017년 체제를 향해 달려가는 한국 정치는 승자독식의 폐단을 타파할 수 있을까. 이에 아주경제는 총 3회 기획을 통해 87년 체제 이후 한국 정치를 지배한 하나의 큰 흐림이자 사회 갈등의 축인 지역주의 해소를 위한 길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사표에 따른 민의 왜곡, 망국적인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선거구제 개편이 수면위로 급부상했다. 헌재가 국회의원 선거구별 인구편차를 2대 1로 조정하라고 판결 이후 정치권의 주판알 튕기기가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2일 여야 정치권은 선거구제 개편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이슈 확보를 위한 사활 건 전쟁을 이어갔다.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위원장 김문수)는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선거구획정위원회의 독립기구화 등 혁신 안건을 논의했고,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연내에 국회에 개헌특위를 구성하자”며 국회 특위에서 정치 혁신을 논의하자고 맞받아쳤다.
◆선거구제 단골손님 ‘중대선구제’…합의 과정 ‘산 넘어 산’
헌재 거론되는 선거구제는 중대선거구제·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권역별 비례대표제·석패율제 등이다. 모두 한 지역구에서 단 한명만 당선되는 지역주의 카르텔의 빗장을 열기 위한 대안 카드다.
그간 소선거구제는 사표에 따른 민의 왜곡뿐 아니라 ‘51대 49’로 이긴 자가 ‘100%의 권력’을 갖는 대의제의 모순에 직면했다.
문제는 선거구제 개편이 정치인들의 기득권과 거대 양당(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체제는 물론 국민들의 투표 비율과 권력 배분 비례 등의 문제 등과 직결된 핵 폭탄급 이슈라는 점이다. 그만큼 합의 과정이 어렵다는 얘기다.
이런 까닭에 정치전문가들은 소선거구제의 대안으로 그간 가장 많이 거론된 중대선거구제를 꼽는다. 이는 하나의 선거구에서 2인 이상 다수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제도다. 소선거구제의 단점인 대표선출의 제한성과 사표 발생 극복은 물론 소수정당의 원내진입을 용이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거대 양당 체제의 기득권 강화 △금권정치 만연 가능성 △계파 정치 심화 등은 단점으로 꼽힌다. 또한 중대선거구제 논의는 행정구역 개편으로 이어질 공산이 커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게리멘더링(Gerrymandering-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에게 유리한 선거구를 정하는 것)이 횡행할 가능성이 많다는 점도 아킬레스건이다.
◆독일식·권역별·석패율제 논의도 봇물…핵심은 기득권 내려놓기
진보정당이 제1순위로 꼽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도 유력한 대안으로 꼽힌다. 이는 정당 전체 의석수를 정당 득표율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지역 주민의 민의를 반영하는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의 장점을 모두 살린 제도로 평가받는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경우 지난 17∼18대 총선 당시 부산에서 52%와 54를 얻은 새누리당이 90%가 넘는 의석수를 차지한 폐단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독일식 선거제 도입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국회의원 수 증원에 대한 국민적 반발이 극에 달할 수 있어 논의 과정 자체에 난항이 예상된다.
이밖에 △권역별 비례대표제(현재의 개별 광역단위를 묶어 권역별 비례대표를 도입하는 안) △도농복합형 선거구제(도시 중대선거구제+농촌 소선거구제) △석패율제(소선거구에서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를 통해 구제할 수 있게 하는 제도) 등이 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이날 아주경제와 통화에서 선거구제 개편과 관련, “현재 소선거구제를 그대로 두고 선거구를 재획정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것 같지는 않다”며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던가, 아니면 선거구제를 개편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