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선미 기자 = 한국은행이 올들어 8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각각 0.25%포인트 인하했지만 돈이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기업들은 곳간에 돈을 쌓아둔 채 투자를 유보하고 있고, 소비심리는 세월호 참사 직후 수준으로 뒷걸음쳤다.
2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매출 기준 국내 10대 기업이 보유한 현금과 현금성 자산, 단기금융상품(단기매도 가능 금융자산)은 125조41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108조9900억원보다 15.1%(16조4200억원) 늘어난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단기 부동자금은 사상 최대 기록을 또 경신했다. 투자협회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현재 단기 부동자금은 처음으로 750조원 선을 돌파한 것이다.
전체 단기 부동자금은 2008년 말 540조원에서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며 2009년 말 647조원으로 급증했다. 이후 2010년 말 653조원, 2011년 말 650조원, 2012년 말 666조원으로 정체를 보이다가 지난해 말 713조원으로 다시 늘었다.
한은이 중립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두 번이나 기준금리를 내린 것은 성장 모멘텀을 살리겠다는 의도였다. 실제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달 24일 "한쪽에선 가계부채를 우려했지만, 성장의 모멘텀(동력) 불씨를 이어가겠다는 생각으로 금리 인하를 결정했다"며 대기업 최고경영자들(CEO)에게 투자를 당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기업들의 투자자금은 시장으로 유입되지 않고 되레 체감경기는 연중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은이 발표한 10월 제조업의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72로 전달보다 2포인트 떨어졌다. BSI는 세월호 참사 이후 내리막길을 걷다가 9월 다소 개선(74)됐으나 다시 8월의 연중 최저치(72)와 같은 수준으로 하락했다.
특히 수출 기업의 BSI는 전달 72에서 70으로 떨어져 2009년 3월(56) 이후 5년7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BSI가 100보다 낮으면 경기를 나쁘게 보는 기업이 좋게 보는 기업보다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박성빈 한은 기업통계팀장은 "세계 경기 둔화, 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 실적 악화 등 나쁜 소식만 들리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대내외 불확실성을 크게 느끼고 있는 것"이라며 "전기전자, 철강 등 일부 업종은 경쟁이 심화된 데 따른 어려움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제 상황에 대한 소비자들의 심리를 보여주는 소비자 심리지수도 상황이 좋지 않다. 한은이 집계한 10월 소비자 심리지수는 105를 기록해 지난달보다 2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세월호 참사 직후인 5월과 같은 수준이며 7월 이후 3개월 만에 뒷걸음 친 것이다.
문제는 6개월 후의 경기를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시각 역시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향후경기전망 CSI가 97에서 91로 6포인트나 떨어졌다. 이는 2013년 4월(88)이래 최저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미약한 경제심리를 끌어올릴 수 있는 조치가 시급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과 가계도 불안 심리에 투자와 소비를 줄여 돈이 돌지 않는다"며 "경제 심리를 하루라도 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