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고은 시인이 후보에 늘 오르며 기대하던 노벨문학상이 올해도 한국을 비켜갔다.
노벨문학상이 프랑스 소설가 파트리크 모디아노에게 돌아가면서 한국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또 다시 후일을 기약하게 됐다. 유력한 후보로 올랐던 케냐 출신의 작가 응구기 와 시옹오와 일본의 간판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수상에 실패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9일(현지시간) 노벨문학상에 모디아노를 선정하고 "붙잡을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기억의 예술로 환기시키고 (나치의 파리) 점령기의 생활세계를 드러냈다"고 선정 이유에 대해 밝혔다.
▶모디아노=전쟁으로 인해 잃어버린 삶의 흔적 등 인간 존재의 근원을 끊임없이 탐색해왔다. 파편화된 기억을 통해 작품을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제2의 마르셀 프루스트'로 불리기도 한다.
1945년 7월 30일 프랑스 파리 교외 불로뉴 비양쿠르에서 유대인 혈통의 이탈리아 출신 사업가인 아버지 알베르 모디아노와 벨기에 영화배우인 어머니 루이자 콜페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열여덟 살 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한 그는 1968년 소설 '에투알 광장'으로 로제 니미에상, 페네옹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했다. 2차세계대전의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사람들은 인간 존재와 생의 근원을 탐구하는 그의 작품에 열광했다. 그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평단과 독자의 찬사를 받았다.
'외곽 순환도로'로 1972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대상을, '슬픈 빌라'로 1975년 리브레리상을, 1978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로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받았다.
2차 세계대전의 참화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모디아노에게 2차 세계대전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요 배경이자 소재다. 그의 부모는 나치가 점령한 파리에서 서로 만나 신분을 감춘 상태에서 함께 살았다.
대표작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한 퇴역 탐정이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는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모디아노는 이 작품을 통해 '기억 상실'로 상징되는 프랑스의 비극적 현대사의 한 단면을, 나아가 인간 존재의 '소멸된 자아 찾기'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담아냈다.
1957년 남동생의 죽음도 그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67년부터 1982년 사이에 발표한 초기 작품들을 동생에게 바쳤다. 동생의 죽음은 어린 시절의 종말을 의미했다.
▶가장 많은 노벨문학상 수상국=프랑스다. 올해 노벨문학상이 프랑스 소설가 파트리크모디아노에게 돌아가면서 프랑스 작가로는 2008년 르 클레지오 이후 6년만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다.
프랑스는 1947년 상을 받은 앙드레 지드를 시작으로 프랑수아 모리악(1952), 알베르 카뮈(1957), 생-종 페르스(1960), 장 폴 사르트르(1964), 클로드 시몽(1985), 르 클레지오(2008), 모디아노에 이르기까지 모두 15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바 있다.때문에 스웨덴 한림원의 유럽작가 '편애' 라는 지적도 있다.
▶수상자 출신 나라=대부분 유럽작가들이 휩쓴다. 스웨덴 시인 토머스 트란스트뢰메르(2011), 독일 소설가 헤르타 뮐러(2009),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2008), 영국 소설가 도리스 레싱(2007), 영국 극작가 해럴드 핀터(2005), 오스트리아 소설가 엘프레데 옐리네크(2004), 헝가리 소설가 임레 케르테스(2002), 영국 소설가 V. S. 네이폴(2001) 등 유럽 작가들이 수상했다.
노벨문학상의 경우 문학적 업적 외에 지역별 안배도 어느 정도 고려된다는 점에서 올해는 최근 20여 년간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미국, 아프리카의 차례라는 관측도 있었지만 결국 프랑스 소설가 모디아노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우리나라는 왜 못받나=우리나라 근현대 문학은 일본, 중국 등을 통해 서구문학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형성됐고, 우리만의 색채를 가진 현대 문학이 나온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아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시장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출판본부 김윤진 본부장은 "한국 문학을 자발적으로 번역하려는 외국인 번역가가 많아져야 한다"는 평도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노벨문학상은 노벨의 유언에 따라 전 세계인이 공감하는 보편적 주제를 다루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에게 주어진다"면서 "작가들이 인류 보편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지속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