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창피해서 못 다니겠다"

2014-09-21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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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워싱턴 특파원 홍가온 기자 =요즘 미주 한인들 가운데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성추행과 관련 한국에서 일어난 창피한 일을 미국인들도 듣고 와서 '어떻게 된거냐'며 물어볼까봐서이다.

바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캐디 성추행 사건 때문이다. 아직 유죄판결이 나지 않았지만 본인의 진술이나 이런 저런 정황을 봤을 때 의심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지난해 5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여성 인턴 성추행 사건의 충격이 아직 남아 있는 가운데 일어난 한국 정치인의 추한 모습으로 한인들의 수치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한국 정치인만 그런걸까? 아니면 권력, 소위 말하는 파워를 갖게 되면 그렇게 되는걸까?

미국에서도 성추행 또는 성폭행 사건은 일어난다. 발생 건수로 봤을 때 한국보다 많을지도 모르겠다.

19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이 함께 나서 대학 캠퍼스 내 성폭력을 종결시켜야 한다며 호소하는 모습만 봐서도 미국 내 성폭력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알 수 있다.

대학생이나 일반인도 그렇지만 정치인들의 성관련 범죄와 스캔들 관련 뉴스 또한 심심찮게 신문지상에 오르 내린다.

미국 정치인들의 섹스 스캔들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빌 클린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내 인턴과의 섹스 스캔들을 비롯, '터미네이터'로 유명한 영화배우 출신 아놀드 슈왈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가정부와 관계를 갖고 아들까지 뒀다.

이 정도는 둘이 좋아서 벌인 일이니 성폭력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로 인해 고통을 받는 가족들의 입장을 고려할 때 이것 역시 폭력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섹스 스캔들 외에도 정치인들이 저지르는 성폭력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해 캘리포니아의 밥 필너 샌디에고 시장은 자신의 18살 직원에게 성폭력을 저질러 시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지난 2012년 플로리다주의 리처드 슈타인버그 주하원의원은 유부녀인 자신의 부하 여직원에게 음란한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들통나 사임하기도 했다.

정치인들의 섹스 스캔들이나 성폭력 사건이 더욱 주목 받는 이유는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도덕적 기대치가 높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나라를 이끌고 나가야 하는 정치인이라면 일반인보다는 높은 수준의 도덕,윤리적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기대, 그리고 그런 수준의 기준을 충족시킬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인들은 섹스 스캔들이 되었든, 성폭력 범죄 사실이 되었든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면 즉각 자신의 지지자는 물론 국민을 상대로 공개사과를 한 뒤 자리에서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

때때로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가 모함을 위한 악성 루머일 뿐이라며 버티다 결국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어떨 수없이 물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를 더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인들은 좀 다른 점이 있다. 박 전 국회의장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자신의 잘못은 인정 안하고 '캐디가 딸같고 손녀 같아서 만졌다'는 말만 한다.

정상적인 할아버지, 아버지라면 손녀나 딸의 가슴을 만지진 않는다. 여성을 장난감 정도로 여기지 않는 이상 이같은 행동을 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여성에 대한 존중심이 없는데다,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으로는 아무 짓이든 할 수 있다는 비뚤어진 가치관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권력이 있으면 아무 여자에게 아무 짓이나 해도 될거란 생각.

혹시 이들은 자신이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여러 암컷을 커느린 사자나 물개 쯤이나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는 이들이 '동물의 세계'가 아닌 이성적인 행동이 필요한 '사람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따끔하게 일깨워줘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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