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년간 유럽 기업인들이 500억 유로(약 67조3000억원) 이상의 현금을 비축했으나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국적 회계 컨설팅업체 딜로이트에 따르면 유럽·중동·아프리카(EMEA) 지역에 상장된 유럽 기업들이 비축해 둔 현금 규모는 1조 유로에 달한다. 이는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의 7000억 유로와 비교할 때 40% 이상 늘어난 수치다. 또 블룸버그 EMEA지수에 편입된 1200개 기업의 보유 현금 규모도 지난 12개월 동안 470억 유로 확대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기업들의 현금비축이 늘고 있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경제의 불확실성이 계속되면서 만약의 유동성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기업인들의 조치로 해석된다.
딜로이트 EMEA 리서치부문 대표 크리스 젠틀은 "기업들이 투자보다는 현금 보유를 택하고 있는데 이는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나타난 변화"라며 "이 같은 트렌드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위기를 겪은 기업들은 구조적인 위기가 발생해 다시 어려움에 직면한다면, 은행들이 기존에 하던 대로 유동성 공급을 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위험에 대비해 자체적으로 내부 현금을 보유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유럽 기업들이 보유한 현금의 편중현상 또한 심각하다는 것이다.
전 세계 상장기업이 보유한 현금은 3조5000억 달러이고 이 가운데 5분의 4를 전체 기업의 3분의 1이 나눠서 보유하고 있다. 이에 반해 EMEA에서 총 보유 현금 9630억 유로의 4분의 3이상은 17%에 불과한 기업이 차지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3분의 1 이상인 3250억 유로는 제조업종에 집중돼 있다. 즉, 유럽의 주요 대기업들의 투자 기피 현상이 부각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유럽 50대 기업 모임인 유럽기업인라운드테이블(ERT)의 브라이언 에이저 사무총장은 "다양한 부문에서 유럽 경제의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한 기업들은 투자를 꺼리려고 할 것 같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