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처음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자진사퇴 압력에 시달려온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끝내 스스로 물러났다. 총리 후보로 지명된 지 14일 만이다.
문 후보자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시점에서 사퇴하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주는 것”이라며 전격 사퇴했다. 이로써 첫 ‘언론인·충청북도’ 출신 국무총리의 꿈이 수포로 돌아갔다.
책임총리를 놓고 “처음 듣는 말”이라며 국민정서에 반하는 말로 정치권에 충격파를 던진 문 후보는 마지막 기자회견에서도 국민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
대신 언론과 국회에 대해 작심한 듯 쓴소리를 쏟아냈다. 문 후보자가 마지막 순간까지 ‘유체이탈’ 화법을 쓰면서 박근혜 정권의 안위만을 위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 김영근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기자와 만나 “처음에 등장할 때는 언론의 주목을 받고 나왔지만, 끝내 국민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이 퇴장했다”고 비판했다.
실제 그랬다. 지난 10일 박 대통령의 깜짝 카드 주인공은 문 후보자였다. 중앙일보 전 주필이자 충청권 출신 인사. 여권 내부에선 “여론을 살피는 능력 면에선 누구보다도 낫지 않겠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문 후보자는 여권의 화약고로 돌변했다. 총리 지명 직후 그는 식민사관·친일사관 논란에 휘말렸다.
2011년 온누리교회에서 한 발언이 도마에 오르자 문 후보자는 “사과는 무슨 사과(12일)”라고 말했다가 “오해의 소지가 생겨 유감”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곧바로 해당 언론사에 대한 소송 의사를 밝히는 등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 ‘유감→소송→사퇴’의 수순을 밟은 셈이다.
콘크리트 지지율을 보였던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리얼미터’의 6월 셋째 주 정례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 포인트다) 결과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지난주 대비 4.7% 포인트 하락한 44.0%로 집계됐다. 반면 부정 평가 비율은 같은 기간 5.0% 포인트 상승한 49.3%로 치솟았다.
그러자 친박계(친박근혜계) 좌장인 서청원 의원이 공개적으로 문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이쯤부터 여권 수뇌부의 기류도 급변했다. ‘외통수’로 불린 문 후보자도 국정 파행과 여권 내부의 전방위적 사퇴 압력에 버티지 못했다.
이와 더불어 친일 논란에 휩싸인 문 후보자가 명예회복을 한 점도 자진사퇴 카드를 선택하는 데에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가보훈처는 문 후보자의 조부인 문남규 선생이 독립유공자 ‘문남규’와 동일 인물이라고 밝혔다. 여권 내부에서 문 후보자에게 퇴로를 열어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문창극 파문’이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지는 미지수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반전 모멘텀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라며 “박 대통령의 인사가 덫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